[천자 칼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입력 2022-04-19 17:35   수정 2022-04-20 00:04

오페라 ‘마술피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최후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1791년 3월 작곡을 시작해 9월 30일에 완성했고, 바로 그날 오스트리아 빈의 작은 극장에서 초연했다. 공연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성황이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해 12월 5일 ‘레퀴엠’을 미완으로 남긴 채 서른다섯 해 짧은 삶을 마감했다.

그의 사후 종적이 묘연했던 마술피리 원본 악보가 발견된 것은 1870년. 모차르트 연구자들은 이를 계기로 그의 고향이자 활동 무대였던 잘츠부르크에 국제모차르테움협회를 결성하고 1877년부터 1910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모차르트 음악제를 열었다.

이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것이 독일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함께 유럽 양대 음악축제로 자리잡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다. 1920년 극작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매년 여름 음악제를 열기로 했다. 이들은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의기투합해 오페라와 연극,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축제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첫 공연으로 호프만슈탈의 연극 ‘예더만’을 초연한 이후 1924년과 1944년을 빼고는 매년 축제가 열렸으니 100회를 넘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세계적인 명성은 이곳 출신 지휘자 카라얀과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빈필)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빈필은 시종일관 호스트 오케스트라로서 이 페스티벌의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해왔다. 슈트라우스부터 클레멘스 크라우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등 수많은 명지휘자가 빈필과 함께 축제를 빛냈다. 특히 1956년부터 축제의 총감독을 맡은 카라얀은 고향의 음악제를 위해 33년 동안 헌신했다. 자신이 종신지휘자로 있던 베를린필을 축제에 끌어들여 성가를 드높였고, 대규모 축제극장을 열어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을 불러모았다. 인구 15만여 명의 잘츠부르크는 이 축제 덕분에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예술의 도시가 됐다.

한국경제신문사가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맞아 오는 8월 3일부터 세 차례 진행하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VIP 투어는 축제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다. 빈필과 베를린필의 콘서트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은 물론 연주자들과의 만남, 백스테이지 투어 등이 한여름의 특별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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