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엔 착시가 숨어 있다. 무엇보다 자가 주거비가 빠져 있다. 자가 주거비란 대출 이자나 재산세, 감가상각비 등 소유 주택을 직접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을 말한다. 우리나라 주거비는 소비자물가의 9.8%를 차지하는 집세 항목으로 들어가는데, 자가 주거비는 뺀 채 전·월세 등락만 반영한다. 자가 주거비를 합친 주거비를 높은 비율로 반영하는 주요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자가 주거비를 포함한 미국의 주거비 비중은 32%에 달한다. 한국의 물가 상승 압력이 미국보다 작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는 이유다.
1965년 첫 조사가 시작된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단골로 뭇매를 맞는 통계다. 국민의 체감물가와 지표 간 괴리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자가 주거비 포함 문제는 2010년부터 줄곧 거론돼 왔다. 국제노동기구(ILO)와 한국은행까지 나서 집값 상승분을 명확히 반영하는 자가 주거비를 물가지표에 적용하라고 권고하고, 국정감사에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통계청은 5년마다 460여 개 조사 대상 품목과 가중치를 조정하면서 주거비만은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면서 물가지수에 자가 주거비 포함 여부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난해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전 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물가 동향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는 그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가상승 국면이 적어도 1~2년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한국은) 주거비 상승이 높았는데도 소비자물가지수에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부분도 있어 서민 고통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물가지수는 국민의 소비생활에 관한 중요 좌표일 뿐 아니라 경기판단 지표, 임금이나 국민연금 수준 결정 기준, 각종 통계자료의 디플레이터(가격변동지수) 역할을 한다. 통계가 먼저 바로 서야 경제정책이 바로 선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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