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사건' 피의자 이은해(31)와 조현수(30)가 구속된 가운데 수사를 지휘한 인천지방검찰청 조재빈 1차장은 "이 사건은 신체접촉이 없는 특이한 사건으로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조 차장은 19일 SBS와 인터뷰에서 "사건이 처음 송치됐을 당시에 증거는 많았지만,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엔 불충분했다"며 "그 상태로 기소했다면 혐의 입증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송을 통해 이은해, 조현수가 잠적 직후부터 전국을 돌며 도피행각을 벌였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조 차장은 "경찰이 초동 조사 잘했지만 검사가 바라보기엔 미흡한 점이 있었다"면서 "이 사건은 살인죄 기소해서 유죄 받아야 하는 사건인데 피의자들의 살인 범위가 제대로 입증되지 않아 기소할 수 없고 구속영장 청구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철저히 검토해보니 신체접촉 없는 특이한 종류의 살인사건이라 판단됐다"면서 "면밀하게 재조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검사들하고 모여 회의한 후 7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만들어 6개월간 집중적으로 수사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 영장만 30여차례 청구했으며 살인사건 현장검증도 하고 관련자 수십명을 조사하기도 했다.
조 차장은 "이은해와 김현수의 도주를 예상 못했나"라는 질문에 "피의자들이 30여대 포렌식 기기를 압수당했다. 분석하는 과정에서 성실하게 참여했고 변호인이 선임돼 있어 도망갈 줄은 몰랐다"고 전했다.
이어 "검찰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동원했지만 도주 중인 두 사람을 검거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공개수사로 전환해서 가는 게 맞는다고 판단해 경찰과 합동수사팀을 꾸리게 됐다"고 말했다.
조 차장이 계획적 살인의 정황으로 본 '복어 피 살인 시도'를 밝혀낸 배경과 관련해서는 "포렌식을 통해 디지털기기를 면밀히 보던 중 이은해와 조현수가 삭제한 텔레그램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복어 피, 정소, 애를 이용한 정황이 파악돼 살인 시도가 있었으며 그때 살아난 후 다시 살인에 이르게 된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조 차장은 2차 살해 시도인 낚시터 살인에 대해서는 "방송에 누군가 물에 빠뜨렸다 내가 구해줬다 이렇게 한 게 있다는 정보 입수하고 해당 방송사 녹음 파일 확보해서 분석해보니 이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알게 됐다"면서 "장소 특정하는 게 중요했는데 통신수사 통해 용인에 있는 모 저수지로 확인이 돼 여러 차례 답사해서 살해 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은해는 남편의 보험금을 내지 못해 효력이 만료되자 지인에게 돈을 빌려 다시 효력을 살리고 살인 시도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 차장은 "'계곡 살인'은 신체접촉 없이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이라 고의를 입증하기 굉장히 어려운 사건이다"라며 "경찰 단계에서는 고의성 입증에 실패했다. 검찰이 6개월 노력해서 1~2차 살해 시도 후 3차에 성공해 살인했다는 혐의 밝혀냈다. 공소 유지 직접 유지해본 검사들이 할 일이며 경찰이 하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황상 상호 모순되는 점 없는지 미진한 점 없는지 확인한 후 판사가 보기에 '살인한 게 맞다'고 확신이 설 수 있을 정도로 증거 확보해서 법원 보내는 게 우리의 목표다"라며 "경찰과 검찰 합동해야만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수완박 관련해 "지금도 많은 살인사건이 검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검사의 역량으로 진실 파헤쳐주길 바라고 있지만 검수완박되면 할 수 없다. 검수완박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건지 묻고 싶다"면서 "국회의원들은 검사가 기록만 봐도 국민을 재판에 넘길지 아닐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같은데 그렇지 않다. 검사는 신이 아니다. 기록 보고 관련자 보고 추가 수사 해야 죄를 지었는지 재판에 넘길지 알 수 있다"고 부연했다.
조 차장은 "경찰 역시 수사 통해 많은 증거자료 확보하지만, 살인사건같이 어려운 사건은 검사가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증거 확보 못 한다"면서 "이은해 사건만 해도 검사가 6개월간 수사해서 밝혀낸 것이다. 많은 사건이 무혐의로 처리되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은해와 조현수는 사건 발생 2년 10개월 만인 이날 구속됐다.
이들은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께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윤 모 씨(사망 당시 39세)를 살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2019년 10월 가평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 보험업계는 경찰이 초기 내사 단계에서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해 종결했으나 이후 보험사가 이은해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발하고 A 씨의 가족, 지인들이 의심스러운 정황을 경찰에 제보하면서 재수사가 진행됐다는 관측이다.
검찰은 이들이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윤 씨에게 4m 높이의 바위에서 3m 깊이의 계곡물로 스스로 뛰어들게 한 뒤 구조하지 않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씨 명의로 든 생명 보험금 8억원을 노린 이들이 당시 구조를 할 수 있는데도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검찰은 이른바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은 같은 해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윤 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는다.
이은해와 조현수는 지난해 12월 14일 검찰의 2차 조사를 앞두고 잠적한 뒤 4개월 만인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 삼송역 인근 한 오피스텔 22층에서 경찰에 검거됐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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