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성 김앤장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로펌 대형화의 필요성’ 질문에 한 말이다. 김앤장은 한국 변호사 수만 900명에 달한다. 외국변호사까지 합치면 1000명이 훌쩍 넘지만 올해도 이미 신입 및 경력 변호사 60여 명을 신규 채용했다. “로펌 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우수인력 확보가 핵심이며, 이 과정에서 조직 대형화는 필연적”이라는 게 김앤장의 판단이다.
다른 대형 로펌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법무법인 광장과 율촌, 세종, 화우 등 주요 로펌들 사도 몸집 불리기 경쟁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공정거래수사 대응, 4차산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글로벌 시장 진출 등의 과정에서 전문인력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로펌이 단순 법률자문에서 종합 컨설팅사로 진화하는 가운데, 많은 전문가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야만 생존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공정거래 역량 강화도 화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강조했고, 서울중앙지검의 공정거래조사부가 최근 조직 규모를 키운 만큼 관련 수사가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법무법인 세종은 지난달 ‘공정거래 형사대응 TF’를 발족했다. 70여 명의 공정거래그룹 전담인력을 필두로 형사그룹 변호사들과 디지털포렌식센터의 밀접한 협업을 위해서다. 공정거래그룹의 경우 최근 서울고등법원 공정거래전담부 출신 최한순 전 부장판사와 공정거래 부문 경험이 풍부한 주현영 변호사, 박인규 전문위원을 영입했다. 형사그룹에선 지난달 영입한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부 검사 출신의 정광병 변호사가 합류했다. 법무법인 태평양도 ‘공정거래 위험진단 및 종합지원단’에 이어 ‘공정거래조세형사 TFT’를 발족해 사전 준비부터 사건 대응까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중소벤처기업부의 의무고발요청제에 주목하고 있다. 의무고발요청제는 중기부나 조달청이 불공정 사례를 포착할 경우 업계 파급효과 등을 감안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경우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 바른 관계자는 “중기부, 감사원, 조달청 출신 변호사와 전문위원 영입을 통해 대응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평양은 올해 초 송영주 전 한국존슨앤드존슨 부사장을 규제그룹 고문으로 데려왔다. 송 고문은 존슨앤드존슨 이전엔 보건복지부 정책홍보 담당관과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로 일하면서 보건헬스케어 산업뿐만 아니라 관련 정책과 규제 등에 대한 경험을 두루 쌓았다. 율촌도 김성호 전 식품의약품안전처 경인식품의약품안전청장을 공정거래부문 의료제약팀 고문으로 영입했다. 세종은 인수합병(M&A) 부문에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최충인 변호사를 영입했다. 미국 변호사인 최 변호사는 심슨대처&바틀릿, 김앤장, 율촌에서 M&A 자문업무를 담당했다. 글로벌 사모펀드(PEF)운용사 칼라일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투자,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에 투자한 해외 기관투자가들의 투자금 회수,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해외 투자 유치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법조계에선 올해 로펌 간 전문가 영입 경쟁 과정에서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팀 단위 이동도 잦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무법인 지평 관계자는 “최근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장 출신인 전강진 변호사를 영입하는 등 검찰 출신 영입을 적극 추진 중”이라며 “경력 변호사와 함께 전문팀 영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시장 확대에 힘을 주는 로펌도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싱가포르 사무소를 확대할 계획이다. 2020년 9월 국내 대형로펌 중 처음으로 사무소를 설립한 바른은 최근 현지 변호사를 새로 영입했다. 이동훈 바른 대표변호사는 “현지 법률자문이 필요한 한국기업을 위한 자문 및 소송은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상속·증여 및 세무관련 자문 서비스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바른은 연내 미국 시장에도 진출할 방침이다. 법무법인 광장은 현대자동차 등 국내 기업과 금융사들이 속속 진출하는 동남아시아에 사무소를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형로펌의 대형화 추세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한 로펌업계 관계자는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새 영역을 개척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효율성·지속성이 담보돼야 한다”며 “사건 수임 시 이해관계 충돌 등 다양한 제약도 있음을 고려하면서 조직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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