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F&F 회장의 꿈은 ‘패션 굴기(?起)’다. “패션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포부를 서슴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말할 만큼 자신감이 충만하다고 한다.‘디스커버리’에서 싹을 틔우고, ‘MLB’로 만개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의 브랜드 라이선스 전략은 F&F에 돈을 넣은 이들의 무릎을 탁 치게 했다. 전혀 패션과 무관한 브랜드를 들여와 패션으로 둔갑시키다니….
그래서 투자업계에서 김 회장에게 ‘헌정’한 별명은 ‘갓(god)창수’다. 그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낼 것 같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한 투자 자문사 대표는 “김창수 회장 덕분에 6배의 차익을 거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삼성출판사 가(家)의 차남으로 작은 사업부였던 F&F를 독립시켜 패션 대장주(株)로 만들었다. 1961년생인 그의 공격적인 경영 행보는 한 세대 전의 패션 기업인인 1945년생 윤윤수 휠라홀딩스 회장을 닮았다. 휠라 한국법인 대표이던 윤 회장은 2007년 미국 경영진의 지지를 한 몸에 받으며 부도 위기에 빠진 휠라 글로벌 본사를 삼켰다.
주가 흐름도 대체로 비슷하다. F&F 홀딩스의 주가는 10년 전 2000원대에서 작년 한때 9만원을 웃돌 정도로 수직으로 상승했으나 23일 현재 3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휠라홀딩스 주가 역시 10년 전 1만원대에서 2019년을 기점으로 9만원 고지를 넘보다 현재 3만원대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투자 전문가들은 김창수 회장의 ‘미래’에 좀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일단 김 회장은 젊다. 경영인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연간 4000억원 이상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를 벌어들이는 등 자금력이 막강한 데다 추석 연휴 때 미국 출장을 다녀올 만큼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비해 윤 회장은 경영 일선에선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유럽 등 글로벌 협력이 필요한 부문에서 ‘어른’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을 뿐, 경영의 많은 부분을 아들인 윤근창 휠라홀딩스 대표에게 넘기고 있다. 1975년생인 윤 대표 역시 휠라 미국법인을 부활시키는 등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김창수 회장의 호적수로 언급되기엔 아직 입증해야 할 것들이 많다.
테일러메이드에 대한 김창수 회장의 접근법은 윤윤수 회장이 타이틀리스트를 인수했을 때보다 훨씬 전략적이다.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큰 그림에서 테일러메이드에 투자하고 있다는 얘기다. 휠라만 해도 2012년 아쿠쉬네트를 미래에셋PE와 함께 인수하면서 골프와 패션의 접목에 집중했다. 인수 이듬해인 2013년 타이틀리스트 어패럴을 내놨다. 휠라코리아에 따르면 당시 휠라는 목적구매형 소비자(dedicated consumer)를 겨냥한 프리미엄 전략을 전개했다. 프로 골퍼가 쓰는 골프공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해 골프에 집중하는 골퍼들에게 의류와 각종 용품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려 했다.
윤 회장의 이 같은 전략에 대해선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로 골퍼들이 급증하면서 아쿠쉬네트 주가는 2019년 초 21달러대에서 지난해 1월 한때 57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중국 골프 산업이 예상과 달리 성장 정체에 빠지면서 휠라의 전략에 중대 차질이 생겼다. 중국 골프 산업 규모는 2014년 108억위안에서 2019년 95억 위안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골프를 녹색 마약으로 규정, 공직자들의 골프를 일체 금지하는 등 강하게 규제한 탓이다.
윤윤수 회장이 타이틀리스트를 프로 골퍼의 브랜드에 국한했다면, 김창수 회장은 테일러메이드를 ‘골프, 그 이상’으로 확장하는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중저가 골프채로 전락했던 테일러메이드는 경영진의 절치부심과 코로나19로 인한 골프 특수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골프업계 관계자는 “미국 젊은 골퍼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가 테일러메이드”라며 “골프에 처음 입문한 MZ세대들이 보기에 테일러메이드는 아빠가 쓰는 타이틀리스트나 캘러웨이가 아닌,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테일러메이드의 EBITDA는 2억2000만달러(약 2600억원)로 전년(1억1300만달러) 대비 2배가량 증가했다.
테일러메이드를 통한 김창수 회장의 도전이 실제 꽃을 피울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현재까지 F&F는 테일러메이드와 관련된 전략에 대해 초기 투자자에게까지 “재무적 투자자일 뿐, 아직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까진 김창수 회장이 테일러메이드 경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바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회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조만간 행동에 나설 것이다. 형만 한 아우 없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깬 그의 ‘차남 DNA’는 F&F를 MLB의 성공에만 안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게 분명하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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