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21일 15:5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값이 너무 올라 주요 연기금도 참여에 부담을 느낄 겁니다.”(부동산 자산운용사 관계자)
“4조5000억원 이상에 팔릴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금융권 관계자)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 매각을 둘러싸고 금융산업이 시끄럽다. 작년 말부터 오피스 3개 동과 콘래드호텔(사진)을 통으로 내놨는데 예상 매각 가격이 너무 올라버려서다. 지난달 2차 입찰 이후 알려진 예상 가격은 4조4000억원에 달한다. 토지 소유권 없이 임차권만 가져가는 거래인데도 오피스빌딩 거래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가격 상승을 이끄는 인수 후보는 두 곳이다. 하나는 신세계프라퍼티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이지스자산운용, 다른 하나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부동산 펀드 설정 금액 기준 국내 1위와 2위 자산운용사다. ‘초대박’을 눈앞에 둔 매각 주체인 캐나다 브룩필드자산운용 측은 경쟁을 부추기느라 혈안이다. 지난 15일엔 부동산 매각 관행상 유례를 찾기 힘든 3차 입찰까지 받았다. 브룩필드가 2016년 IFC를 사들일 때 지불한 돈은 현재 예상 가격의 절반 수준인 2조5500억원이다.
매각 측의 불투명한 입찰 절차, 비상식적으로 비싼 가격 우려에도 두 자산운용사는 매수 의지는 여전히 강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랜드마크 거래를 통해 부동산 금융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일각에선 운용사 개인 오너가 있어야 가능한 대담한 입찰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입찰 초기 참여했던 싱가포르계 투자회사 ARA코리아자산운용을 비롯해 마스턴투자운용, 코람코자산신탁 등은 뜻밖의 과열 분위기에 발을 빼야 했다.
문제는 지나친 경쟁이 최종적으로 국민 노후 자금을 갉아먹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건물값을 비싸게 넘겨받을수록 IFC를 기초자산으로 설정하는 펀드의 기대 수익률은 낮아지는데, 펀드의 주요 수익자로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최근 금리 급등으로 부쩍 높아졌다. 업계 추정 IFC 임대료는 1650억원 수준이다. 이를 예상 매각가격으로 나눈 ‘캡레이트(cap rate)’는 3%대 중반에 그친다. 가장 안전한 자산인 국고채 10년물 금리(21일 현재 연 3.3%)와 비슷한 수준이다. 수익률을 높이려면 저금리 차입으로 ‘레버리지’를 키워야 한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만 시장 금리가 1%포인트 이상 뛰며 상품 매력을 키울 수있는 선택지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한 부동산 투자회사 임원은 “최근 수개월 사이 차입금리 급등으로 인해 오피스빌딩 투자 환경이 급격히 악화했다”며 “누가 IFC를 사든 주요 연기금이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수익률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망스러운 수익률을 제시하더라도 국내 연기금·공제회 투자 유치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외국계 부동산금융회사 임원은 “한국 기관투자가들은 부동산이 결국 오른다고 믿는 성향이 강하다”며 “당장의 낮은 수익률을 신경 쓰지 않는 사례가 많고, 부동산 투자를 위한 대기 자금(dry powder)도 풍부한 편”이라고 말했다.
아직 두 운용사는 어떻게 상품 구조를 짤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최근 공실률이 0%에 가까운 상황에서 건물 가치를 더 끌어올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화제가 될 만큼 비싼 값에 기초자산을 사들였다면, 관련 상품의 매력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가격 조정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IFC 인수전의 승자는 이르면 이달 말께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국내 1, 2위 자산운용사들의 지배력 싸움이 키운 손실 위험을 떠안는 주체가 국민의 노후 자금이 아니길 바란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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