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추앙해요."
김지원, 손석구 '추앙커플'이 시청자들을 '추며들게' 했다. JTBC 토일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이야기다.
'나의 해방일지'는 지극히 평범한 염씨 삼 남매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풀어내며 호평받고 있다. 길을 잃은 듯 공허한 마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 등 누구나 한 때, 한 번쯤 고민했을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마음 한편을 옮겨놓은 대사, 세밀하게 표현된 인물들의 내면과 감정의 흐름을 제대로 포착한 배우들의 열연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인물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와 감정에 주목한 작품이지만, 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보여주는 시너지도 흥미롭다. 특히 관계를 통해 변화해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은 앞으로를 더욱더 기대케 하는 관전 포인트. ‘나의 해방일지’ 속 관계들에 눈길이 가는 건, 이들의 관계가 평범하면서도 독특하고,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하기 때문이다. 여느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남녀 간의 관계나 가족, 동료들의 모습이지만, ‘나의 해방일지’는 그 안에서 더 깊은 차원의 감정을 끌어낸다. 이에 볼수록 더 매력있는 ‘나의 해방일지’ 속 관계들을 짚어 봤다.
‘나의 해방일지’는 견딜 수 없이 촌스러운 삼 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소생기다. 첫째 염기정(이엘 분)과 둘째 염창희(이민기 분)는 매일 투닥거리고, 막내 염미정(김지원 분)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서로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땐 꼭 함께다. 막차를 놓친 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퇴근길도 마찬가지다. 현실 남매를 빼다 박은 이들의 모습은 매 장면 공감과 웃음을 안겼다.
4회에서는 염창희와 염기정의 다툼에 어쩌다 슬리퍼를 맞은 염미정의 모습이 담겼다. 늘 조용한 막내이지만, 슬리퍼를 냅다 현관 밖으로 던져버리는 모습은 유쾌한 재미를 선사했다. 남매들 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아버지 염제호(천호진 분)와 어머니 곽혜숙(이경성 분)도 리얼한 가족의 시너지를 보여줬다. 밥상에서 아들을 나무라는 아버지와 이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어머니, 그 옆에서 익숙한 듯 밥을 먹는 형제들의 풍경은 현실감이 넘쳤다. 삼 남매의 일상에 가족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앞으로 이들이 또 어떤 현실적인 매력으로 공감을 안길지 기대를 모은다.
듣도 보도 못한 고백에 염미정을 밀어내던 구씨였지만, 결국 그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염미정을 추앙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염미정 뿐만 아니라 자신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내면의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그렇게 ‘추앙커플’로 거듭났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인간애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사람의 변화는 묘한 설렘을 불러온다. 낯설지만, 확실한 설렘이다.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성장해나갈 이들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두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조태훈의 둘째 누나 조경선(정수영 분)이 염기정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우연히 조태훈을 재회한 염기정은 다시 만날 빌미를 만들기 위해 가지고 있던 복권 열 장을 몽땅 선물했다. 동생 앞에서는 조태훈의 단점을 들먹이며 툴툴거렸지만, ‘금사빠’ 염기정은 이미 그에게 빠지고 있었기 때문. 조태훈의 등짝과 친절한 웃음은 염기정의 머리를 지배해버렸다. 사랑으로 해방을 꿈꾸는 여자 염기정은 그렇게 조태훈과 관계를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한 만남과 생각지 못했던 ‘썸’이 어떻게 그려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가짜 동호회라도 만들려는 찰나, 염미정은 두 사람에게 함께 동호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무언가를 배우거나 함께 어울리는 게 아닌, 지금 이곳에서 ‘해방’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해방클럽’을 하자고. 늘 툴툴대던 박상민 부장도 염미정의 진솔한 말에 설득됐고, ‘해방클럽’이 탄생했다. ‘해방클럽’ 멤버들의 모임은 이제 막 시작됐다. 변화의 시작을 함께할 세 사람, 행복을 찾아나설 내향인들의 조용한 반란이 기대를 모은다.
‘나의 해방일지’ 5회는 오는 23일 밤 10시 30분 방송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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