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국가 전략기술 연구개발(R&D) 등을 주도할 대통령 직속 민간합동위원회가 만들어진다. 이런 전략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 집행과 성과 평가, 중장기 목표 설정 등은 민간에 전권을 위임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따르면 반도체 등 국가 전략기술의 R&D 로드맵을 짜고 예산 집행과 사업 평가 등 업무를 담당할 대통령 직속의 민간합동위원회를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래 먹거리가 될 국가 전략산업을 관할하는 조직을 대통령 직속 조직으로 둔다는 의미다.
당초 민간합동위는 대선 공약이었던 차세대 반도체 산업을 다루는 조직으로 논의가 진행됐지만, 통상 마찰 등이 우려되면서 관할 대상을 2차전지, 차세대원전, 바이오, 우주·항공 등 국가 전략기술로 확대키로 했다.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 인수위원인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가 전략기술의 지정과 세부 과제 선정 등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 민관 합동으로 검토해 마련키로 했다”며 “전략 로드맵 수립하고 중장기 기술개발 목표 설정 등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합동위의 세부 조직과 인선 등은 청와대개혁태스크포스(TF)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위는 효율적인 반도체 R&D 예산 집행과 평가 등을 위해 민관합동위 하부 조직에 민간 기업, 대학, 연구소들이 상시 협력하는 조직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산·학·연 협의체인 SRC(미국반도체연구협회)를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텔, 엔비디아 등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과 스탠포드대학,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등 내로라 하는 대학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다. 정부가 조직 운영에 관여하지 못 하도록 연간 운영비를 대부분 민간에서 부담하는 게 특징이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반도체기업들의 R&D 업계의 요구를 파악하고 학계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민간 전문가 중심의 상시 운용 조직이 필요하다”며 “국내 대기업들도 SRC와 같은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한다”고 전했다.
인수위는 특히 정부의 반도체 관련 R&D 예산이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등으로 흩어져 있고 구심점이 없어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되는 업계 관행 등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대학 R&D 역량이 민간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쳐진 결과 기업과 대학의 공동연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장기 연구 과제를 선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04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국 12개 대학 등과 함께 추진한 차세대메모리사업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산·학·연에서 300명이 전문가들이 참여해 300개가 넘는 특허출원을 거둘 정도로 성과를 냈다. 당시 삼성전자의 담당임원이 현재 파운드리사업부장인 최시영 사장이다. 당시 사업단장이었던 박재근 한양대 교수(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R&D 예산 집행할 수 있는 창구를 민간 주도로 일원화하고 예산 배분과 성과 평가 등도 민간이 주도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국내 대기업들도 단기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장기 과제에 대해선 공동 연구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전했다. 남 교수는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된 분야에 대해선 민간 전문가에게 전권을 부여해 범부처 임무지향형 R&D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며 “R&D 예비타당성의 조사기간을 단축하고 기준 금액을 상향하는 등 제도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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