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하면 샤넬을 떠올리게 된다. 샤넬백을 사놓으면 가격이 오른다고 ‘샤테크’, 샤테크를 위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 오픈런으로 산 가방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족’까지 샤넬과 관련된 신조어가 늘어나고 있다.
‘명품의 대명사’에 등극한 지금과 달리 20세기 초 샤넬은 귀부인들에게 편안한 옷을 제공하는 대중적인 브랜드였다. 에드몽드 샤를 루가 쓴 《코코 샤넬》은 꽤 두껍지만 샤넬의 생애 이야기와 1900년대 초중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 패션에 관한 디테일한 분석이 담겨 있다. 전기는 실재한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교훈과 함께 한 시대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1971년 88세로 세상을 떠난 코코 샤넬은 여성들을 옷에서 해방시킨 인물이다. 샤넬의 전기를 읽으며 여성의 옷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천재적인 창의성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영감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했는지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샤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지만 코코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져 있다. 샤넬이 22세 때 카페에서 ‘코코리코’와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누구를 만났기에’를 자주 불렀고, 노래가 끝나면 팬들이 “코코! 코코!”라고 외치며 앙코르를 요청하면서 붙은 이름이다.
샤넬은 살아생전에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집안 배경과 성장 과정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열두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샤넬은 언니와 함께 오바진수녀원 내 고아원에 맡겨졌다. 샤넬이 평생 좋아했던 ‘엄격함 깨끗함 깔끔함 단순함’은 바로 오바진수녀원의 특징이었다.
1913년 샤넬은 고급 상가가 밀집한 공토비롱 거리에 정식 부티크를 열었다. 당시 여성들은 모슬린 장미를 잔뜩 단 거대한 모자에 긴 치마를 입고, 세 줄짜리 진주 목걸이 등의 화려한 장식을 두르고 다녔다. 코르셋으로 온몸을 조인 귀부인들은 옷을 입고 벗을 때 하인들의 조력을 받아야 했다. 여성들은 끈을 버튼 훅으로 고정한 신을 주로 신고 다녔는데 끝이 뾰족한 구두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볼이 좁았다.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었고, 남편들은 이것을 복종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코르셋을 착용한 적이 없는 샤넬은 여자들에게 가볍고 느슨한 옷을 입히겠다는 계획 아래 기수들의 옷을 변형한 스웨터와 세일러복을 만들었다. ‘발끝이 보일 듯 말 듯하게 바닥까지 일자로 내려오는 원피스, 세일러복, 장화 모양의 뒷굽이 있는 구두, 장식이 없는 모자’로 대변되는 샤넬 스타일은 갑갑하고 무거운 의상 속에 갇혀 지내던 귀부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샤넬은 심플하면서도 편리한 디자인으로 입기도 벗기도 움직이기도 힘든 옷과 씨름하던 여성을 속시원히 해방시켰다. 남성의 조력을 받아야 걸을 수 있었던 여성들이 옷이라는 속박을 벗어던지면서 시간과 역량을 발전적인 곳에 쏟게 됐다. 샤넬의 등장은 뒤뚱뒤뚱 조심하며 장식품 역할을 했던 여성들이 보폭을 넓히며 자신의 삶 속으로 힘차게 들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
가수가 되고 싶었으나 노래 솜씨가 신통찮았던 샤넬은 자신이 잘하는 패션 디자인에 모든 걸 쏟아 레전드가 됐다. 감추기 급급했던 소녀 시절에 보고 느낀 점이 창의성의 발판이 된 사실에 주목하라. 어제의 결핍이 영감의 화수분이 돼 멋진 미래를 선물하는 게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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