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배상금 문제로 화폐를 무한정 찍었습니다. 그렇게 발생한 것이 초인플레이션이죠. 이때 독일 국민은 지폐를 무더기로 가져와서 물건을 사거나 불쏘시개로 사용했습니다. 잘못된 통화정책은 국민 경제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역사적으로도 이렇게 나라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사례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아진 상평통보는 시중에서 사라지고, 막대하게 풀린 당백전의 화폐가치는 계속 하락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1866년 쌀 한 섬에 7~8냥 하던 것이 2년 후에는 여섯 배나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악화는 실제 가치가 낮은 것, 양화는 실제 가치가 높은 것이죠. 조선의 사례에서는 당백전이 악화, 상평통보는 양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악화인 당백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백전의 가치는 더욱 하락했고, 물가가 올라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죠.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에 큰 피해를 주며 1년도 안 돼 주조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화폐의 신뢰가 떨어지면 의도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게 당백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은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자 왕권 강화를 위한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때 타버린 경복궁을 중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재정이 고갈된 상태였죠. 농민의 삶은 피폐했고, 지배층의 부패가 심해 세금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당백전’(사진)이라는 화폐의 발행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기존에 유통되던 ‘상평통보’에 더해 당백전을 함께 발행했습니다. 당백전은 이름대로 명목가치는 상평통보의 100배였지만, 실제 가치는 5~6배에 불과했습니다. 당백전은 처음 6개월 동안 1600만 냥이 풀렸습니다. 당시 상평통보 유통량이 당백전 유통량보다 적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어마어마한 현금이 풀린 것을 의미하죠.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아진 상평통보는 시중에서 사라지고, 막대하게 풀린 당백전의 화폐가치는 계속 하락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의미합니다. 1866년 쌀 한 섬에 7~8냥 하던 것이 2년 후에는 여섯 배나 폭등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시중에서 상평통보가 사라지고 당백전이 유통되는 상황을 ‘그레셤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법칙은 소재가치가 다른 화폐가 동일한 액면가의 화폐로 유통되면 소재가치가 높은 화폐는 퇴장하고 가치가 낮은 화폐만 유통되는 현상입니다. 16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인 토머스 그레셤이 편지에 ‘좋은 돈과 나쁜 돈은 같이 돌 수 없다’고 한 말이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라는 문구로 전해졌습니다. 여기서 구축은 쫓아낸다는 의미입니다.악화는 실제 가치가 낮은 것, 양화는 실제 가치가 높은 것이죠. 조선의 사례에서는 당백전이 악화, 상평통보는 양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악화인 당백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백전의 가치는 더욱 하락했고, 물가가 올라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죠. 흥선대원군이 당백전을 발행해 자금을 마련하려던 계획은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에 큰 피해를 주며 1년도 안 돼 주조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정책으로 화폐의 신뢰가 떨어지면 의도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게 당백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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