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다. 소득이 행복에 절대적이고 경제 성장만 계속된다면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리라 의심치 않았다. 국내총생산(GDP)의 상승곡선을 유지하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올 거라며 성장에 집중했다.
1974년. 경제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소득이 아무리 증가해도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역설’이 발표되면서다. 《지적행복론》은 이스털린 역설의 주인공 리처드 이스털린(97)이 쓴 책이다.
저자는 1970년대부터 주류 경제학계가 배제해온 사람들의 감정에 최초로 주목한 경제학자였다.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단어다. 단,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해 바라보면 행복은 객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GDP 증가는 행복지수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은 1인당 실질 GDP가 브라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브라질의 행복 수준은 상승한 반면, 중국 국민들의 행복 수준은 하락했다. 행복이란 끊임없이 ‘사회적 비교’에 의해 그 정도가 정해진다. 1인당 GDP 등의 숫자만으로 행복의 정도를 계산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실질 소득 증가는 물가상승률, 주변 사람들의 소득 증가분과 비교할 때 의미를 갖는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특정 경제나 정치 체제가 우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돈 많은 국가가 더 좋은 복지 정책을 펼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역설한다. ‘퍼주기식 복지’가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사례도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우려가 세계에 퍼지던 2017년. 스웨덴 국민 80%는 “로봇과 AI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인 72%가 로봇에 빼앗길 일자리를 걱정하고 있던 때다. 당시 스웨덴 고용통합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일자리는 사라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일자리에 맞게 사람들을 훈련시킵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보호하지 않아요. 우리가 보호하는 것은 노동자입니다.”
100세를 앞둔 저자는 결혼과 출산, 이혼과 건강 등 개인의 삶 속에 경제학과 심리학을 접목해 행복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글은 강의를 열고 학생들과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쓰여 쉽게 읽힌다. 책은 후반부에 ‘행복혁명’의 개념에 도달한다. 인류가 산업혁명, 인구혁명을 거쳐 이젠 삶의 질을 중심에 둔 행복혁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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