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社가 20% 성장?…기타회사 된 삼익악기

입력 2022-04-22 17:24   수정 2022-04-23 01:21

피아노는 악기의 제왕이라고 불린다. 88개의 건반에 수많은 강철 현(絃)과 해머가 어우러진 종합 예술품이다. 하지만 보급형 제품이라 하더라도 수백만원이 넘는 가격 부담에 많게는 350㎏까지 나가는 무게, 적잖은 공간을 차지하는 크기 탓에 시장의 한계가 뚜렷했다. 그러나 국내 최대 피아노 제조사 삼익악기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0% 가까이 뛰는 ‘깜짝 성장’을 이뤘다. 삼익악기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삼익악기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해 매출 2954억원에 영업이익 333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475억원(19.2%), 영업이익은 131억원(65.2%)이나 껑충 뛰었다.

재도약의 발판은 주력인 피아노가 아니라 기타였다. 지난해 삼익악기의 일반기타 매출 증가율은 42.1%, 전기기타 매출 증가율은 74.4%에 달했다. 기존 주력 품목인 업라이트 피아노(전년 대비 매출 36% 증가)는 물론 그랜드 피아노(41.4%)보다 성장세가 가파르다. 스모 선수가 유도 선수로 변신하듯 피아노에서 기타로 성장 동력을 바꿨다.

삼익악기는 글로벌 유명 기타 브랜드인 ‘깁슨’을 인도네시아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조해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또 다른 글로벌 유명 기타 브랜드 ‘팬더’의 라이선스도 취득했다. 팬더 기타는 OEM 방식으로 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김성일 삼익악기 상무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악기 시장에서 비대면 레슨 확대와 취미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타 수요가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주축인 피아노는 고급화를 추진하고 있다. 2008년 독일 명품 피아노 회사 자일러를 인수한 뒤 성장성이 높은 중국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사업 범위도 악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세계적 수준의 목재 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건식 사우나 등 헬스케어 분야로도 진출하고 있다.

국내 악기 제조업은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해 1993년엔 일본, 미국에 이어 수출액 기준 3위(2억8937만달러)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악기 제조회사들은 문을 닫거나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문화가 확산한 것도 악재였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악기 시장 규모는 2000년 3990억원에서 2010년 2880억원으로 10년간 28% 감소했다. 삼익악기와 HDC영창, 콜텍 등이 활동하는 악기 시장은 2010년 이후 사실상 제자리걸음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10여 년간 구체적인 시장 통계조차 작성되지 않고 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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