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부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망자의 기록이나 주변 사람의 진술을 살펴 죽음의 원인을 추정하고 조사하는 것을 뜻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끔찍한 일은 이미 벌어졌고 돌이키지 못한다. 그럼에도 삶의 조각을 애써 맞춰보는 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절벽을 찾아내 그곳에 안전망을 치기 위해서다. 심리부검에서 발견한 자살 징후와 원인은 정부가 자살예방정책을 수립하는 데 근거가 된다.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전쟁에 대한 심리부검 소견서다. 표면적으로는 역사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이 벌인 ‘도쿄 대공습’(사진)을 다뤘다. 그러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책 도입부에 “사실 내가 하려는 얘기는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고 했다. ‘의도와 다른 결과’ 사례를 통해 기술의 윤리, 리더십과 의사결정 절차에 대해 고민한다. “이것은 우리 의도의 혼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볼 때 이런 혼란을 항상 잊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저자 글래드웰은 ‘천부적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다. 워싱턴포스트, 뉴요커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아웃라이어》를 비롯해 《다윗과 골리앗》 《티핑포인트》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썼다.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경영학 이론을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내는 게 특징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사상가 10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 그가 첫 역사 논픽션을 냈으니 평범할 리 없다. 논픽션의 가장 큰 약점은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가 곧 ‘스포일러’(영화 등의 결말을 미리 알려 감상을 방해하는 행위)다. 1945년 3월 10일 새벽. 일본 상공에 뜬 미군 폭격기는 도쿄 시내에 대량의 소이탄을 투하한다. 하룻밤 사이 1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글래드웰은 결과가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을 추적하며 독자의 눈길을 붙잡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쿄 대공습의 최초 시작은 “전쟁터에서 최대한 많은 목숨을 살리고 싶다”는 발상이었다. 군수품을 생산하는 공장, 그곳의 기계를 정밀 타격하기를 원한 ‘폭격기 마피아’들이 있었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리면 적군을 최대한 덜 죽이고 최대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구상의 실패는 끔찍한 나비효과가 되어 대규모 민간인 학살로 이어진다. “가능한 한 맹렬하고 잔인하게 싸운다면 전쟁을 단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도쿄 대공습에 이은 히로시마 원자폭탄은 일본을 무릎 꿇게 했다. 그래서, 옳은가? 책은 역사의 조종간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린 지도자들을 하나하나 포토라인에 세운다. 어떻게 이런 지도자가 탄생한 걸까. 책은 전쟁터 한가운데로 독자를 데려다놓고 ‘올바른 선택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어떤 선택의 재검토》의 흡입력에는 정밀한 인물 묘사도 큰 몫을 한다. 서술하지 않고 묘사한다. 비행기의 폭격 조준기를 만들어낸 칼 노든, 윈스턴 처칠의 두뇌 역할을 한 프레드릭 린더만, 폭격을 이끈 군인 커티스 르메이…. 빛바랜 흑백 사진 속 옛사람들을 꺼내서 생동하는 인물로 바꿔놓았다. 끈질긴 취재로 모은 풍부한 재료 덕분이다. 부모와 가정환경, 어린 시절 별명은 물론 결혼 생활 이야기를 통해 각 인물의 성향과 가치관을 짐작하게 한다.
예컨대 지휘관 헤이우드 핸셀 장군이 가장 좋아하는 책은 《돈키호테》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를 꿈꾸는 인물이라는 걸 짐작하게 해준다. 동시에 그 이상이 다소 환상에 가깝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이상, 거시적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는지 보여주는 일화도 덧붙인다. “그는 신혼 때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 아들이잖아요.’”
글이 생명력을 갖는 건 묘사의 힘 때문만이 아니다. 책이 품고 있는 고민이 오늘날에도 유효할 때 힘이 생긴다.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은 발전하고, 종종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글래드웰은 묻는다.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듣고 이렇게 자문해보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느 편이었을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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