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지난 20일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난 1월 시행한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전체 응시자(3197명) 대비 53.5%로 결정했다. 합격자 수는 1712명으로 지난해에 비해 6명 늘었지만 합격률은 전년(54.0%)보다 다소 하락했다. 해가 갈수록 응시자는 늘어나는데, 합격률은 7년째 50% 안팎에 묶여 있다.
이런 사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황폐화 논란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험에 의한 선발에서 교육을 통한 양성’을 내걸고 2009년 야심 차게 출범했지만 학교별 특성화는 유명무실해지고, 변호사시험 학원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고시 낭인’이 사라진 자리는 ‘변시(변호사시험) 낭인’이 채우고 있다. 시대에 맞는 법률가 양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인 배출, 경제적·사회적 약자의 법조계 진출 등 로스쿨 도입 명분은 퇴색하고 사법시험의 병폐를 고스란히 답습해 가는 모습이다. 고졸자도 법률가가 될 기회를 제공하던 사시 제도와 달리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사다리조차 막고 있다는 비난은 덤이다. ‘로스쿨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온라인·야간 로스쿨’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어 로스쿨 개편 논의가 불붙고 있다.
로스쿨은 오랜 준비와 논의를 거쳐 사법개혁의 혁명적 조치로 출범했지만 도입 취지와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사시 부활론’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도 로스쿨의 불편한 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고비용 구조가 그 중심에 있다. 전국 25개 로스쿨 간 협의체인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에 따르면 변호사 자격 취득에 들어가는 비용(2020년 기준)은 1억9250만원에 달한다. 학원비 등 입학 준비에 2560만원, 학비 4810만원, 생활비 4930만원 등이 들어간다. 로스쿨에 ‘돈스쿨’ 혹은 ‘현대판 음서제도’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이유다. 이처럼 높은 비용은 로스쿨을 ‘못 오를 나무’로 만드는 진입장벽이다. 입학생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사법시험 합격자의 3배 수준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관계자는 “매년 평균 정원의 20% 가량이 등록금의 100% 이상을 장학금으로 받고 있다”고 했다. 로스쿨은 등록금 수입의 30% 이상을 장학금으로 편성하고, 그중 70% 이상을 경제적 환경을 고려한 장학금으로 지급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 9분위와 10분위에 속한 고소득층 가구의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로스쿨 도입으로 다양성이 확대됐다는 주장도 공허하다. 2012년 변호사시험을 처음 치른 뒤 2020년까지 합격자 가운데 법학 비전공자 출신 비율은 52.3%(7510명). 2008년부터 시험이 폐지된 2017년까지 사시의 법학 전공자 비율이 82.1%(3989명)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다양한 전공자를 법조인으로 양성하고 있다는 게 로스쿨들의 자평이다. 하지만 로스쿨 합격자 중 저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6년 새 30%나 줄었다는 게 문제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로스쿨 총 정원 6000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부터 소득 3분위에 속한 학생은 905명으로 2016년(1276명)보다 29.1% 줄었다. 저소득층 학생 수는 2019년 1040명, 2020년 980명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시간이 지나 ‘오·탈·자’로 전락한다. 오탈자는 다섯 번의 시험에서 모두 떨어진 로스쿨 졸업생을 일컫는 말이다. 변호사시험 응시생은 로스쿨 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로부터 5년 이내 다섯 번까지만 시험을 볼 수 있다. 병역의무 이행 외에 다른 예외 조항은 없다. 법조인이 될 기회를 영원히 박탈당한 오탈자는 1000명이 넘는다.
시장이 포화상태라서 변호사 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로스쿨 졸업생 취업률이 90%를 웃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변호사 인력 공급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낮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인구 1만 명당 변호사 수는 5명(2018년 기준)으로 미국 41명, 영국 31명, 독일 20명 등과 비교하면 상당한 격차가 있다. 눈을 지방으로 돌리면 상주 변호사가 없어 주민들의 법률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키기 어려운 ‘무(無)변촌’도 적지 않다.
변호사 자질 저하 우려는 법률시장에서 경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변호사가 많아지면 특권을 버리고 전문가의 능력을 요구하는 직역으로 진출하면 된다. 신규 변호사들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경쟁하면서 다양한 분야와 지역을 개척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 수혜는 국가와 기업, 국민이 누리게 된다.
로스쿨 시스템은 사시를 대체한 이후 아무런 변화 없이 독점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입학생은 도입 당시와 마찬가지로 25개 학교에 2000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신규로 개설되거나 탈락한 학교는 단 한 곳도 없다. 총제적 난국이란 평가가 로스쿨 내부에서 흘러나오는데도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로스쿨 교수의 자성 섞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미뤄선 안 됩니다. 입시 제도도, 파행적 교육과정도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로스쿨도 조만간 사시처럼 존재 의미를 부정당하고 도전받게 될 겁니다.”
이 중 야간 로스쿨은 가장 유력한 현실적 대안이다. 2년 휴직 제한에 묶여 있는 공무원은 로스쿨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3년 휴직이 안 돼 입학을 포기하거나, 부득이 직장을 그만두는 사례가 많았다. 일부는 3학년 강의에 출석하지 않은 채 학점을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야간 과정은 이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보완 수단이 될 전망이다.
온라인 로스쿨은 현재의 고비용 전일제 수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는 만큼 비용을 현재보다 20~3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하지만 야간·온라인 로스쿨 도입 공약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조 인력의 질적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 그래도 로스쿨 변호사의 법률지식 수준 저하가 법조계의 걱정거리로 떠오른 상황에서 주경야독으로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온라인 로스쿨에 대해선 더욱 신중한 반응이 나온다. 제대로 된 실무교육, 토론과 실습이 중요한데 온라인은 제약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로스쿨의 본향인 미국에선 1865년 조지워싱턴대가 야간 과정을 개설한 이후 야간 로스쿨이 전체 로스쿨 학생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주경야독으로 변호사가 된 사실은 유명하다. 반면 미국에서 인가받은 별도의 온라인 로스쿨은 단 한 곳도 없다. 원격교육을 통한 온라인 학점 취득을 일부 인정해주고 있을 뿐이다.
야간·온라인 로스쿨 개설을 둘러싼 논란의 수면 밑에도 변호사시험 합격률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변시 낭인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문호 확대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란 의구심이 크다. 출구(변시 합격률)는 막은 채 입구만 늘린다면 새로운 형태의 로스쿨 개설 시도는 논란 속에 좌초하거나, 도입하더라도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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