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에너지 수급 체계' 근본부터 바꿔야

입력 2022-04-24 18:01   수정 2022-04-25 00:08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두 달을 넘기고 있다. 세계 에너지시장의 큰손인 러시아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정상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면서 유럽의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동시에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하고 있다. 1970년대 석유파동 때처럼 불황에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발생까지 우려된다. 미국의 휘발유값이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는 갤런당 4달러를 훌쩍 넘어섰고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8.5%를 기록했다.

이번 사태가 전쟁이란 매우 예외적 상황이므로, 종결되면 에너지시장이 다시 정상화할 수 있을까? 유럽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급속히 줄이면서 그 여파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추가 생산 여력이 있는 중동이나 미국이 공급을 늘려도 이를 수입하기 위한 인프라가 갖춰져야 하고, 화석에너지 의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근본적인 에너지 전환까지 하려면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구축해온 세계적인 에너지 공급체제에도 한계가 있다. 국제 에너지시장의 통합과 비축 역량 확대로 어느 한 곳에서 수급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빠른 시간에 나름대로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 거래가 우호적인 나라끼리 이뤄져 점차 제한된다면 각국은 에너지 수급 체계를 이른 시일 안에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적자를 크게 보고 있는 한국전력이 발전회사와 전력 구매를 외상으로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해 논란이 일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전기요금의 꾸준한 상승 요인이 있지만, 올해 1분기 8조원을 웃도는 영업손실 발생은 많은 부분 국제 자원가격 급등에 기인한 것이다. 한전의 연간 매출이 60조원 정도인데 이런 손실이 연말까지 지속된다면 30조원을 넘어 정상적인 경영조차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무한정 요금 동결로 버틸 수 없는 만큼 소비자와 한전, 정부가 적절한 부담 방안을 검토해 어느 정도 요금을 현실화해야 한전의 부실을 막고 미래 전력 수급을 위한 투자도 할 수 있다. 향후 수요자에 대해서는 요금 규제를 풀어 에너지 소비 절약을 유도하고 민생용에 한해서 정부가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가 3월 4일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있는 최대 원전단지인 ‘자포리자 원전’에 미사일을 투하하면서 방사능 누출을 우려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다행히 원자로 같은 핵심 시설이 아닌 행정시설만 파괴돼 원전은 안전하게 운영되는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기술로 건설한 원전이 4개 단지에 15기를 운영 중인데 전력 수요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발전소는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 원전을 운영하는 회사가 무과실 책임을 지고 보상하며 사후에 책임 관계를 규명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것이 국제 규범이다. 그리고 피해가 커서 전력회사가 감당할 수 없을 때 최종 책임을 국가가 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러시아가 전략시설인 원전단지를 점령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운영은 우크라이나 기술진에 여전히 맡기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우크라이나 기술진이 사명감을 갖고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해 대형 사고를 방지했다.

몇 해 전 우리 원전에 해킹 시도가 있었다. 이처럼 원전에 대한 외부 위협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방호체계를 점검하고 비상 상황에서 원전 기술진이 제대로 대응하도록 훈련과 사기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원자력계가 항상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어야 원전 사업이 지속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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