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미술전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올해 주제다. 여성 초현실주의 화가 리어노라 캐링턴(1917~2011)이 쓴 동화책 제목에서 따왔다. 캐링턴은 인간과 동식물 등을 합친 신비주의적 화풍으로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한 인물. 총감독 체칠리아 알레마니(45)는 “캐링턴의 그림처럼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편견을 부수고 약자와 ‘잡종’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비엔날레가 열린 ‘물의 도시’는 여성·흑인·식민지 출신·성소수자 등 ‘소수자(Minority)’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가득 찼다. 순수예술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변화 등 첨예한 이슈(I·Issue)를 다룬 작품이, 서양 강대국 등 주류의 시각보다는 지역(L·Local)의 특수성을 강조한 작업이 주목받았다. ‘미술 한류(K·Korea)’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이번 비엔날레가 세계 미술계에 던진 화두를 올해의 주제 ‘MILK’의 네 개 알파벳으로 풀었다.
다만 본 전시와 국가관 전시작들이 비슷한 주제를 다룬 탓에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왔다. 20일 만난 한 미국 큐레이터는 “같은 작품이 반복되는 느낌”이라며 “병행 전시인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도 여성 작가들을 조명했지만, 파블로 피카소 등 남성 거장들의 작품으로 완급을 조절했다”고 말했다.
국가관이 있는 자르디니 공원 미국관 앞에는 흰 모래 포대를 한가득 쌓은 작품 ‘우크라이나 광장’이 들어섰다. 우크라이나를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비엔날레 측 작품이다. 양혜규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그룹전을 펼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여성 화가 마를린 뒤마가 연 회고전에서도 지역의 맥락을 담아낸 작품들이 걸렸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을 피해 네덜란드로 망명한 그는 뒤틀린 이미지를 통해 흑인들의 고통을 표현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5·18민주화운동을 미학적으로 재조명한 ‘꽃 핀 쪽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지난 21일 찾은 박서보 그룹전에는 론티 이버스 아만트재단 대표 등 세계적 컬렉터들이 찾았다. 전광영 개인전이 열리는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미국 출신인 한 큐레이터는 “큐레이터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하는 전시란 소문이 났다”고 했다. 한국관도 헝가리 루드비히 뮤지엄을 비롯한 여러 미술관의 전시 제의를 받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다.
베네치아=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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