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설 공사 입찰 때마다 평균 입찰가격(균형가격)만 맞히면 수주가 가능한 종합심사낙찰제의 허점을 노려 20~30개 건설사가 달려드는 ‘벌떼 입찰’이 반복되고 있다. ‘일단 따고 보자’는 식으로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가 늘어 공사 진행 과정에서 수차례 공사비가 증액되는 일이 벌어지기 일쑤다.
해외 건설사들은 공공공사에서 스마트 건설 등 첨단 기술력 배양에 주력하고 있다. 국내 공공공사도 첨단 기술 평가를 강화하고, 건설사가 대안 설계를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건설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0억원 이상 공공공사 입찰 때 적용되는 종심제는 종전 최저가낙찰제의 덤핑 낙찰을 막기 위해 2016년 도입됐다. 가격만이 아니라 공사 품질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취지였다. 큰 틀에서 종심제의 평가 점수는 전문성·역량을 보는 공사 수행 능력(만점 50점)과 입찰 가격(만점 50점)으로 계산된다. 여기에 건설안전·지역경제 기여도 등 사회적 책임을 심사해 최대 2점의 가점을 주는 방식이다.
업계에 따르면 대형 공공공사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 3곳 중 1곳이 공사 수행 능력 항목에서 만점을 받고 있다. 이렇다 보니 시공 역량 평가는 유명무실화되고, 균형가격에 근접한 입찰가격이 낙찰자를 결정하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공공공사 수주를 ‘운(運)찰제’나 ‘눈찰제(눈치로 공사를 낙찰받는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이유로 낙찰된 뒤 공사하는 과정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수도권 고속철도(수서~평택)만 해도 공구별로 건설사들이 많게는 16차례씩 설계 변경을 요구하면서 공사비가 150% 가까이 증액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입찰 제도의 허점이 결국 건설사의 역량 약화로 이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평가 시스템이 공사 수행 능력에 차별성을 두지 않고 별다른 기술 혁신을 요구하지 않아 건설사도 자체적인 기술 개발에 힘쓰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낙찰받으면 하도급으로 공사하는 경우가 많아 산업재해나 공사 비용 대금 문제를 두고서도 잡음이 많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건설사 스스로 설계 방식을 제안하고, 제시한 가격을 책임지는 책임형 대안 제시 낙찰제를 해법으로 내놓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선 입찰 방식을 획일적으로 규제하지 않고 발주자에 따라 일정 부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장 가격을 토대로 하되 기술 설비와 방법이 우수한 건설사를 선정하는 식이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입찰 단계에서부터 건설사들이 기술 개발과 공사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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