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마크롱은 프랑스에서 ‘역대 최연소 대통령(2017년)’에 이어 ‘20년 만의 첫 연임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중도 세력의 지지 기반이 무너진 게 확인된 만큼 두 번째 임기는 ‘험난한 5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번이 세 번째 대선 도전인 르펜은 41.46%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 관저) 입성에 또다시 실패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프랑스를 보다 강력하고 통합된 유럽연합(EU)의 초석으로 만들겠다는 마크롱의 공약이 르펜이 내세우는 민족주의와 보호주의를 이겨냈다”고 평가했다.
이번 결선투표는 5년 만에 이뤄진 마크롱과 르펜의 재격돌이었다. 지난 10일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지 않아 1·2위를 차지한 이들이 결선에 올랐다. 마크롱은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현직 대통령이 됐다. 그는 당선을 확정지은 뒤 에펠탑 옆 샹 드 마르스 광장을 찾아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마크롱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극우 포퓰리스트 대통령만은 안 된다’는 프랑스인들의 결집력으로 분석된다. 프랑스 시민들은 그간 극우 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이념을 떠나 하나로 뭉치는 ‘공화국 전선’을 구축해왔다. 1차 투표에서 3위로 낙선한 극좌파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 후보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르펜에게 한 표도 줘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날 뉴욕타임스(NYT)에 나온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마크롱이 임기 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르펜보다는 나을 것 같아 선택했다” “르펜이 당선될까봐 한숨도 못 잤다” 등이었다. 마크롱도 이날 “유권자 중 상당수가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 후보를 저지하기 위해 투표했다는 것을 안다”고 인정했다. 히잡 착용 규제로 대표되는 르펜의 반이슬람 정책도 ‘관용의 나라’ 프랑스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친러시아·푸틴 노선도 르펜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해석된다.
선거에서 패했지만 르펜의 성과는 돋보였다는 평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르펜의 이날 득표율은 결선투표에 진출한 역대 프랑스 극우 후보 가운데 가장 높다. 이날 두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5년 전(32.2%포인트)보다 절반가량 줄어든 약 17%포인트였다. 기권율은 28%로 1969년 후 가장 높았다.
하지만 마크롱의 앞길은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극우와 극좌로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는 일이 급선무로 꼽힌다. 정년 연장을 통한 연금 개혁 등 저항이 큰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선 6월 프랑스 하원 선거에서 여당의 과반 확보도 필수적이다. 하지만 WSJ는 “르펜 저지를 위해 마크롱을 뽑은 유권자들이 총선에선 다른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마크롱 당선 소식에 유로화는 강세를 보였다. 이날 유로·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42% 오른 1.084달러에 거래를 시작했다. 유럽 자산운용사 카미낙게스통의 프레데릭 레루 이코노미스트는 로이터통신에 “유럽 역학구도가 지속된다는 점에서 마크롱의 승리는 시장을 안심시킨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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