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인정하는 15만명 정치 커뮤니티..데이터로 공론장 형성 기여"

입력 2022-04-28 08:07   수정 2022-04-29 14:18

이 기사는 04월 28일 08:0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보는 태도는 ‘우리만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자기들끼리는 다 맞는 얘기하는 것 같고요. 그것을 깨고 싶었어요.”

정치만큼 뜨거운 주제가 있을까.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정치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커뮤니티는 대개 난장판이다. 유호현 옥소(OXO)폴리틱스 대표는 “그냥 게시판 열어놓고 정치 얘기가 두서없이 쏟아지게 놔두면 곧 쓰레기장이 된다”고 했다. 유 대표는 이 난장판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다.

“현재 인터넷 커뮤니티 중에 정치 커뮤니티는 없어요. 야구 이야기를 하려고, 디지털 카메라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커뮤니티 등이 ‘정치화’되었을 뿐이지요. (시스템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선정적인 글이 더 주목을 받고 동질적인 이들끼리 뭉치는 분위기가 돼요.” 그는 “나와 생각이 다른 의견, 소수 의견도 왜곡되지 않고 또렷하게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커뮤니티

그가 만든 옥소폴리틱스 시스템은 독특하다. 일단 참여하려면 자기 ‘부족’을 정해야 한다. 호랑이(강한 진보), 하마(약한 진보), 코끼리(중도), 공룡(약한 보수), 사자(강한 보수) 5개 부족 중 자기가 속하는 곳이 어딘지를 찾기 위해 간단한 OX 질문에 몇 가지 답해야 한다. 최근 현안에 대한 여러 의견을 물어서 종합적으로 이 사람의 의견이 어디에 해당하는지 찾는 식이다. OX를 묻는다는 데서 회사 이름 ‘OXO’가 유래했다.

아예 진보 보수를 밝히고 시작하는 게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는 뭘까. 유 대표는 부족제를 통해 자기와 비슷한 목소리만 계속 되풀이해 듣는 ‘에코 챔버’를 넘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아예 에코 챔버를 한 곳에 모아놓고, 그런데 뚜껑을 투명하게 해두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 방에선 이런 얘기 하는데 남의 방에선 뭔 얘기 하는지, 왜 그런 얘기 하는지가 훤히 보이죠. 싸우지 않고 안전하게 차이를 알아보고 인정할 수 있어요.” 말하자면 ‘투명한 유리 돔’ 시스템이다.

그는 트위터와 에어비앤비 등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유 대표는 “회사에 다닐 때 분명하게 자기 의견이 다른 이들이 데이터를 놓고 이야기하면서 한 발짝 물러나고 생각을 조정하는 것을 많이 봤다”며 “이런 멋진 의사결정 방식을 한국 기업에서 많이 쓰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정치에 적용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데 이르렀다”고 했다.



◆ VC업계서 먼저 ‘러브콜’

처음(2019년 경)에는 굉장히 간단한 수준의 플랫폼이었다. 돈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그냥 재미삼아 만든 프로젝트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좌우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좌우 사이에서도 어떻게 다른지 지형도를 데이터화하면 좋겠다는 데에서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의 벤처캐피털(VC) 업계에서 먼저 그를 알아봤다. 유 대표는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를 비롯한 한국 VC들 가운데 정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해결해야 할 문제상황(pain point)으로 규정하고, 이를 해결할 스타트업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며 “면접 등을 거쳐 투자를 제안받았다”고 돌이켰다.

퓨처플레이와 해시드 등에서 투자해 준 2억5000만원으로 7명까지 인원을 늘릴 수 있었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의 길을 가려던 동생(유찬현 공동대표)과 의기투합하고, KAIST 석사과정에 있던 사촌동생이 부족에 맞는 디자인을 만들어 주는 등 주변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개발자가 7명, 디자이너 3명, 콘텐츠 제작자 3명 등 21명으로 덩치를 키웠다.



처음엔 치타와 곰이 들어있던 부족제를 색깔과 이미지에 맞추어 공룡과 하마 등으로 바꾸었고, OX만으로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 많다는 피드백이 많아 중간에 △를 추가하는 등 계속 개선을 거듭했다.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전체 의견의 분포에 대한 감각을 또렷하게 제시했다.

현재 월 방문자 수가 15만명(3월 기준)에 이른다. “유튜브 페이스북 구글 등을 통해 광고를 하고 새로운 방문자를 받는데, 이런 광고를 다 끈다고 해도 들어올 헤비 유저가 하루 3000~4000명 수준”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 풍부한 데이터, 의사소통과 공론장 형성 기반

옥소폴리틱스는 단순히 정치를 콘셉트로 삼은 커뮤니티가 아니다. 회원이 되고 활동을 하면 지급되는 옥소코인을 정치인에게 부여하는 방식으로 정치인에 대한 관심도, 인기도 등을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에 대한 찬반을 묻거나, 검찰 수사권 박탈에 관한 의견을 묻는 등 시사 이슈에 관해 끊임없이 정리된 ‘요약’을 제시하고 회원의 의견을 듣는다. 이 모든 과정이 데이터로 고스란히 쌓인다. 과거 매스미디어가 하던 아젠다 세팅과 공론장의 역할을 대신하는데 훨씬 체계적이고 정돈된 데이터가 쌓인다.



유 대표는 “사용자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현 상황에 대하여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고, 이런 데이터에 대한 수요가 많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 같은 큰 선거도 물론 데이터가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데이터만으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지방선거 등에서 필요를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컨대 ‘A후보를 지지하지 않던 이들 중 중도 성향의 3% 가량이 특정한 사건 이후 의견을 바꿨다’는 식의 구체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젊은 층이 사용하지 않는 전화 중심의 기존 여론조사보다 훨씬 간편하고 실시간으로 체크가 가능하다. 유 대표는 선거에 필요한 데이터를 익명화해 추출한 뒤 후보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출시하기로 계획하고 컨설턴트를 선발하고 있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지난 3월 대통령 선거에서도 옥소의 데이터는 빛을 발했다. 유 대표는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련해 “옥소에서도 윤석열 후보가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우리는 여론의 변화를 아주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데, 설날 무렵 윤 후보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의 갈등으로 지지율이 빠졌을 때 민주당에서는 10%포인트 (차이를) 벌리겠다고 자신했지만 옥소에서는 (빠졌던) 지지율이 다시 올라오고 있었어요. 언론보도를 보면 이 사건의 영향이 1주일은 갈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던 거죠.” 다만 “서울시장 선거는 2달 전부터 결과가 예측 가능했는데 대선은 굉장히 박빙이었다”고 전했다.

정식 여론조사가 아닌 만큼 데이터의 대표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유 대표는 “무작위 추출이 잘 구현되면 200명에게만 의견을 물어봐도 충분히 대표성이 있는데, 무작위 추출에 가까워지도록 보정을 해서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대표성도 중요하지만 옥소에서는 ‘흐름’을 먼저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제는 보수진영의 70%가 지지하던 사람이 오늘은 90% 지지를 받고, 반대로 어제까지 60% 지지율을 찍던 사람이 오늘은 50%를 받는다는 그 흐름을 옥소에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 커뮤니티나 댓글창에서는 일부러 도발적인 글을 계속 올리거나 무의미한 글, 반복적인 글을계속 쏟아내 다른 사용자들의 스트레스를 높이는 사용자(어뷰저)들이 존재하곤 한다. 옥소에도 이런 이들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훨씬 적다. 유 대표는 “정치 성향과 활동 빈도가 모두 데이터화되어 있으므로 어뷰징을 골라내는 것은 비교적 간단하다”며 “인공지능(AI) 방식으로 데이터 학습을 시켜가면서 더 좋은 해법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어뷰저는 시스템을 망가뜨린다”며 “관심을 끄는 사람(관종)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의견이 과대대표되지 않도록 시스템에서 조정을 해 줘야 한다”고 했다.



◆ 디지털 세상의 ‘거버넌스 실험 플랫폼’ 꿈꾼다

옥소폴리틱스는 한국인 커뮤니티다. 이걸 글로벌화할 수 있을까? 지나치게 ‘한국적’인 서비스는 아닐까? 유 대표는 이런 질문에 대해 강한 어조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옥소폴리틱스를 통해 한국 정치를 바꾸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정치 실험’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거예요.” 그는 “옥소가 메타버스로서 현실에 한 발 앞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제도 등을 실험해 보는 공간, 거버넌스(지배구조) 실험 플랫폼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국내 초등학교 교사 연구회와 함께 초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솔루션을 적용해 볼 계획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려고 하는데, 학생들이 옥소의 솔루션을 써서 의견을 나누고 장단점을 파악해서 그 규칙을 도입할지, 도입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결정하게 되는 거죠.”



유 대표는 옥소폴리틱스를 소셜미디어 사업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소셜미디어를 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번 큰 싸움이 있었는데, 1차 검색엔진 대전에서는 구글만이 살아남고 빙 야후 등이 죽었고 2차 소셜미디어 대전에선 스냅챗 핀터레스트 트위터 등을 누르고 페이스북만이 살았다”고 했다. 이어 “3차 공유경제 대전에선 에어비앤비 우버 등이 있었고 에어비앤비가 살아남는 중”이라며 “이 다음은 블록체인 같은 영역에서 또 큰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소셜미디어로 이제 와서 도전장을 내는 것은 어렵다”고 봤다.

트위터 등에서 일하면서부터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했다고 했다. 유 대표는 “소셜 미디어 시장에서 유일하게 해결하지 못한 게 정치이고, 페이스북에서 정치 얘기를 많이 하긴 하지만 서비스 디자인이 정치에 맞지 않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거버넌스 실험 플랫폼으로 옥소의 미래를 규정하면 국내 정치를 넘어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할 길도 보인다. 유 대표는 “미국의 경우 작은 동네 단위부터 시정부, 주정부, 연방정부 등 다양한 층위의 거버넌스가 있고 각각의 입법 행정 사법 체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소와 같은 플랫폼은 의견을 수렴하고 문제를 가상으로 해결해 보는 새로운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옥소폴리틱스는 지난 연말 프리A 라운드 투자를 받았다. 곧 시리즈 A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유 대표는 “앞으로 미국 등으로 투자자 저변을 넓힐 것”이라며 “올해의 목표는 옥소폴리틱스를 한국 정당정치를 넘어서는 유니버설 앱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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