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시한폭탄' 한전

입력 2022-04-27 17:23   수정 2022-04-28 08:11

한국전력의 올 1분기 실적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시장에선 영업적자가 5조~8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비관론이 쏟아지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5조8600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올해는 1분기 만에 비슷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적자가 예상되는 것이다. 시장에선 올해 전체로는 적자 폭이 20조~30조원대로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금융투자증권은 지난 12일 한전을 시한폭탄에 빗댄 ‘째깍째깍’이란 보고서에서 “이대로면 4년 뒤 자본잠식”이라고 경고했다.

한전은 이미 자금난에 빠졌다. 올해 회사채를 찍어 빌린 돈만 벌써 12조원을 넘었다. 작년 한 해 회사채 발행액(10조4300억원)보다 많다. 올해 회사채 이자 부담은 2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부채 비율은 지난해(223%) ‘위험 수위’인 200%를 돌파한 데 이어 올해는 300~400%대까지 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금 사정이 빠듯해지자 정부는 5월부터 한전이 발전자회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때 외상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전력 거래 규칙’까지 바꿨다. 한전이 전력 구매 대금 지급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도록 궁여지책을 짜낸 것이다. 한전의 전력 구매 대금은 지난해 55조원에 달했다.
"4년 뒤 자본잠식" 경고음
한전이 이 지경에 몰린 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력 구매 단가가 뛴 상황에서 전기 요금을 거의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발전단가가 싼 원전 대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렸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발전 연료인 석유·석탄·가스 가격이 뛰었다. 그 결과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기를 사오는 전력도매가격(SMP)은 올 1분기 ㎾h당 181원으로 1년 전보다 135%나 급등했다. 반면 한전이 가정, 공장 등 소비자에게 전기를 파는 가격(전기요금)은 ㎾h당 112원으로 1년 전(108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이 “두부값(전기요금)이 콩값(발전연료 가격)보다 싸졌다”고 말한 상황이다. ‘최소한 원가 보장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2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전기요금 결정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상을 억제했고 연료비 연동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연료비 연동제라도 제대로
한전의 재무구조 악화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 삶과도 직결된다. 한전은 송·배전망 유지에 매년 10조원가량을 쓰는데 적자가 쌓이면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경제 성장은 물론 전기차 등 새롭게 생겨나는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투자가 계속돼야 하는데도 말이다. 지금 당장은 어찌어찌 버틸지 몰라도 언젠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때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고 발전소 건설을 억제한 결과 2011년 ‘9·15 순환정전’이 일어났다는 비판도 있다. 한전 적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늘면 언젠가는 혈세로 메워야 한다. 2008년 한전이 2조8000억원의 적자를 냈을 때 정부가 6600억원의 예산을 긴급 투입했다.

한전도 원가 절감 노력이 필요하다. 빚더미에 앉은 상황에서도 한전은 직원 8명 중 1명이 억대 연봉자(2020년 기준)일 정도로 ‘신의 직장’이다. 방만 경영을 없애고 재무구조를 개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한전 적자는 자구책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수준이다.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연료비 연동제만이라도 정상화하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인기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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