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된 건전성 감추려 했나…농협생명·손보, RBC 미공시

입력 2022-04-27 17:42   수정 2022-04-28 01:33

최근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 NH농협생명·NH농협손해보험이 이례적으로 지급여력(RBC) 비율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농협생명은 유상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 RBC 비율에 영향을 줄 이벤트가 많아 계산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보험업계에선 크게 악화된 지표를 감추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금융지주는 지난 22일 전년 동기 대비 1.34% 줄어든 5963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는 내용의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농협금융은 분기 실적을 내놓을 때 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 자회사 실적도 함께 공개한다.

농협생명의 1분기 순이익은 43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농협손보는 전년 동기 대비 23.5% 늘어난 343억원의 이익을 냈다. 매도가능증권 평가손익은 기타포괄손익으로 분류돼 당기순이익에는 반영되지 않고 자본총계와 RBC 비율에만 영향을 미친다. 농협생명이 조 단위 채권 평가 손실을 냈는데도 순이익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두 보험사는 자산 건전성의 핵심 지표로 여겨지는 RBC 비율은 밝히지 않았다. RBC 비율은 보험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때의 보험금 등 손실금액인 요구자본과 이를 보전할 수 있는 자본량인 가용자본 비율을 계산해 구한다. 같은 날 실적을 발표한 다른 금융지주 계열 보험사인 KB손보 KB생명 신한라이프 등은 1분기 RBC 비율을 일제히 공개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1분기 변동 요인이 적지 않아 계산이 지연되고 있다”며 “다음달 13일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하는 분기보고서에는 정상적으로 RBC 비율을 공시할 것”이라고 했다. 농협생명은 지난달부터 유상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1조원이 넘는 자본을 조달했고, 지금도 후순위채 발행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RBC 제도가 도입된 후 실적을 공개하는 보험사가 RBC 비율을 발표하지 않는 건 사상 처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1분기에 조달한 자본이 대차대조표 등 재무제표에 반영됐는데도 유독 RBC 비율만 계산이 늦어지고 있다는 해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농협생명의 작년 말 기준 RBC 비율은 210.5%이고 농협손보는 196.5%를 기록했다. 1분기 말 기준으론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관측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자산과 부채 리스크 평가가 완료되지 않으면 RBC 비율이 산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회계처리가 이미 전산화돼 있고 재무제표 작성과 리스크 평가가 동시에 이뤄져 왔다는 점에서 RBC 비율만 공개하지 않은 건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대훈/이호기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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