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니는 가장 화려할 때 숨어버린 은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곧바로 잠적했다가 10년이 지나서 무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사이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얘기도 떠돌았다.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폴리니는 쇼팽콩쿠르 우승 뒤에 약 1년 동안 꽉 찬 일정으로 순회 연주회를 한 뒤 1년간은 휴식을 취했다. 이후 5년 동안 많지는 않지만 규칙적으로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1968년부터 본격적으로 대중 연주 횟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와전된 이야기 같다.
폴리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 살 연상의 거장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콩쿠르에서 인연이 있다. 아르헤리치가 1957년 제네바콩쿠르에서 우승할 때 폴리니는 2위였다. 쇼팽콩쿠르 우승은 폴리니가 먼저 따냈다. 그다음 회차인 1965년 쇼팽콩쿠르에서 아르헤리치가 우승했다. 두 사람은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연주가로 성장했다.
폴리니의 연주 스타일은 한마디로 잘 깎인 다이아몬드에 비유된다. 그만큼 완벽하게 다듬어진 치밀함과 빈틈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기교가 기교로 느껴지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처럼 다가온다. 그 정도로 기교가 몸에 녹아 있다. 폴리니의 명반은 수없이 많다. 독주곡에서는 역시 쇼팽을 꼽고 싶다. 이 중 1972년 뮌헨 헤르큘레스잘에서 녹음한 연습곡, 같은 곳에서 1974년 녹음한 전주곡, 1975년 빈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녹음한 폴로네즈 등 석 장의 음반이 묶여서 발매된 음반을 추천한다.
폴리니의 에튀드는 쇼핑의 연습곡에 예술성을 구현한 시금석이자 금자탑이다. 전설의 명연으로 오랫동안 일컬어져 왔다. 아르헤리치가 뜨겁고 붉은 열정의 화신이라면 폴리니는 그 대척점에 있다. 파랗게 타오르는 얼음 불꽃 같은 냉철함을 상징한다. 각 곡은 한 치의 오차 없이 흘러간다. 기계 같은 손에서는 쇳밥이 묻어날 것 같다.
프렐류드(전주곡)에서도 분석적인 폴리니의 성향은 여전하다.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고 분석하며 재구성한다. 이 때문에 듣는 이들은 쇼팽 곡들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세부와 더불어 균형 잡힌 전체를 통일감 있게 음미할 수 있다. 폴로네즈에서도 기교와 음악성 양면에서 빼어난 연주를 펼친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