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DAS(Asian Defense & Security) 2022' 전시회. 필리핀의 델핀 로렌자나 국방장관이 전시회장에 모습을 보이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한 곳에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그는 전시회 입장 후 앞쪽 부스를 차지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군용기 등 모형을 살펴보면서 업체 관계자들과의 면담에 시간을 할애했다. 로렌자나 장관은 "한국에서 도입한 FA-50(경공격기), 호위함 등이 있는데 더 수입할 만한 게 있는지 보고 있다"며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방산 협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군 장비 시장 진출을 위한 한국 방위산업 기업들의 진출이 활발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주춤했단 '방산 한류'가 동남아시아에서 다시 재개됐다는 평가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는 27∼29일 마닐라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열린 'ADAS 2022'에 한국 방산기업들과 한국관을 구성해 참가했다. KAI를 비롯해 현대중공업,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기아 등 국내 13개사 방산업체들이 전시 부스를 열고 현지 군 및 방위업체 관계자들을 맞았다. ADAS는 필리핀 최대 규모의 국방 및 보안 부문 전시회다. 한국은 물론 터키, 인도, 이스라엘 등 군사 무기 제조국을 중심으로 150여개 방산 기업이 참가했다.
KAI는 이번 전시회에서 KF-21(전투기), FA-50(경공격기), KT-1(기본훈련기) 등을 선보였다. 현지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것은 KT-1훈련기다. 현재 필리핀 공군이 훈련기 도입 사업을 진행 중이어서 KAI도 이 사업의 공개 입찰에 참여할 것을 계획 중이다. KT-1은 조종사들이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위한 '기본교육 과정'을 이수할 때 활용된다. KAI 관계자는 "필리핀 공군이 훈련기에 대해 테스트를 했고 성능에 만족했다"며 "한국이 다른 해외업체보다 필리핀에 가깝기 때문에 필리핀에 근접 지원을 쉽게 할 수 있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KT-1은 이미 필리핀이 도입한 12대의 FA-50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FA-50은 2017년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있는 테러리스트 근거지에 야간공습을 실시하면서 반군 거점에 정확하게 폭격해 '게임체인저'로 명성을 얻었다. 현재 항속거리 및 무장 능력을 강화해 필리핀 공군에 추가 납품하는 계획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번 전시회에 필리핀 해군 맞춤형으로 개발한 1400t급 'DSME 1400PN' 잠수함을 선보였다. 원래 인도네시아에 수출했던 DSME1400급 잠수함을 바탕으로 국내 '장보고-3'급 잠수함의 고사양 장비를 반영한 모델이다. 필리핀은 아직 잠수함 보유 전력이 없다. 이번 잠수함 모델이 도입되면 필리핀의 첫 잠수함 부대 창설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이번 모델의 잠수함 두 척에 승조원 교육훈련, 종합 군수 지원 등을 포함한 '토털 솔루션 패키지'로 판매 계획을 잡고 있다"며 "필리핀이 구매 의사를 보이면 수출입은행을 통해 파이낸싱 지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시스템은 '함정전투체계'(CMS)를 선보였다. 오락실의 게임기계가 연상되는 콘솔을 이용해 함정에서 외부 목표를 확인하고 사격·지휘 등을 통제하도록 설계됐다. 전시 부스에는 3화면 콘솔과 모듈별 분리가 가능해 설치가 용이한 수출용 2화면 콘솔이 함께 전시됐다. CMS는 센서·무장·통신과 지휘체계를 통합 운용하기 위한 것으로 함정의 ‘두뇌’ 역할을 하는 무기 시스템이다.
한화시스템은 이미 2017년 필리핀 호위함 두 척의 전투체계 사업, 2019년 필리핀 호위함의 성능개량 사업을 진행할 정도로 현지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는 평가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지난 해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필리핀 초계함에도 국산 함정 전투체계를 넣을 예정"이라며 "필리핀 수상함 시장을 교두보로 삼아 동남아시아 CMS 시장 전체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은 필리핀 수출을 타진 중인 원해경비함 모형을 전시했다. 필리핀 해군은 2016년현대중공업과 2600t 규모 '호세리잘'급 호위함 두 척을 계약해 이미 인수 받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 상반기 내 필리핀의 원해경비함 6척에 대한 우선협상 대상자 결정이 나올 예정이어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국내 방산업체들이 이번 전시회에 공을 들이는 것은 그만큼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군사무기 시장의 확장성을 넓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필리핀은 동남아시아 지역 내 한국의 최대 무기 수출 대상국이다. 지난해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이 펴낸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16~ 2020년까지 한국의 무기 수출 국가는 영국(14%), 필리핀(12%), 태국(11%) 등 순으로 많았다.
한국이 필리핀과 국방 분야 교류를 꾸준히 지속하면서 상호 유대관계가 깊어진 게 비결이란 분석이다. 필리핀은 1949년 우리와 수교를 맺은 뒤 한국전쟁에 연합군으로 전투병을 보낸 나라다. 1990년대 들어 우리 공군은 F-5E 제공호 등을 필리핀 공군에 공여했다. 2019년에도 초계함인 충주함(1200t급)을 필리핀 해군이 사용할 수 있도록 무상으로 제공했다. 이같은 초계함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연안 경비나 방어작전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퇴역 함정 등을 필리핀에 지원하면서 현지 시장서 한국군 무기체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다"며 "2014년께 FA-50 등 구매가 시작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필리핀이 5년 단위로 군 현대화 게획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인 점도 호재로 꼽힌다. 2018년부터 2기 현대화 계획이 진행 중이어서 다수 한국 업체들도 참여하고 있다. 나상웅 방진회 상근부회장은 "한국 무기는 가성비가 좋고 세계 군사력 6위의 한국군이 운용하고 있다는 데 대해 큰 신뢰를 받고 있다"며 "계속해서 수출 확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마닐라=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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