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가 일본 수출 대기업의 실적을 개선하는 효과가 10년새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행이 '나홀로 금융완화'를 지속하기로 결정하면서 달러당 환율이 500엔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미즈호리서치&테크롤로지는 달러당 엔화값이 1엔 싸지면 자동차와 전자 등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는 15개 수출 대기업의 2021회계연도 영업이익이 880억엔(약 8559억원) 늘어날 것으로 29일 전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보다 엔저(低)로 인한 영업이익 증가 효과가 120억엔 줄었다.
200개 주요 대기업으로 범위를 넓히면 영업이익 증가 효과는 0.43%로 2008년의 절반으로 줄었다.
2008년 27억엔의 영업이익 증가 효과를 봤던 마쓰다는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영업이익이 3억엔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쓰다와 혼다 모두 2010년 이후 해외로 생산거점을 옮기면서 자국내 수출 비중이 줄어든 기업들이다.
대기업의 엔저 효과가 급감하는 한편 중소기업은 통화 가치 급락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쿄상공리서치가 539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0%가 "엔저는 경영에 마이너스"라고 답했다.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4%에 불과했다.
386만개에 달하는 일본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은 99.7%를 차지한다. 반면 중소기업의 매출 가운데 수출 비중은 3%에 불과하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엔저는 일본 경제에 플러스"라고 말하지만 실제 이득을 보는 기업은 극소수 대기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의 대표 경제학자인 노구치 유키오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사진)는 이날 마이니치신문과 인터뷰에서 "소비자와 노동자를 희생해서 일부 대기업만 엔저로 돈을 버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노구치 교수는 최근 "일본이 선진국 탈락을 목전에 두고 있다. 10여 년 뒤면 일본 대신 한국이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화제를 모은 인물이다.
그는 "경제회복과 임금인상이 부진한 상황에서 비용 상승만 계속되는 '나쁜 엔저'가 진행될 수록 일본은 가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스즈키 준이치 재무상의 외환시장 구두개입과 일본 정부가 최근 발표한 물가안정대책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일본은행의 금융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엔저에 의한 수입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구치 교수는 "일본은행이 ±0.25%인 장기금리 변동 상한폭을 ±2%로 확대해 물가상승분을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당 엔화값이 500엔까지 치솟고(엔화 가치 약세), 일본 국채 투매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는 후지마키 다케시 전 참의원(사진)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5월부터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면 달러 쟁탈전이 벌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400~500엔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건은행도쿄지점장으로 '전설의 딜러'로 불렸던 후지마키 전 의원은 "시장금리가 상승하면 일본은행이 보유한 국채 평가손실이 급증해 사실상 채무초과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은행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 해외 금융회사들이 일본은행의 당좌예금 계좌를 동결시켜 달러를 사는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그는 "외국계 자금이 일본에서 철수하면서 일본 국채를 투매하는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후지마키 전 의원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정부의 재정정책을 지원하는 재정파이낸스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초(超)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다"며 "개인의 방어수단은 달러를 사두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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