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간 굳게 닫혀 있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가 29일 모습을 드러냈다. 올 하반기 임시 개방하기 위해 담장을 철거하는 현장을 찾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회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 “‘쉼과 문화가 있는 열린광장’으로 시민에게 개방한다”고 밝혔다. 오랜 기간 4m 높이의 담장 뒤에 숨어있던 3만7117㎡ 규모의 송현동 부지는 청와대 개방과 맞물려 광화문, 북촌 등 인근 부동산 지형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과 인접해 조선시대까지 왕족과 명문세도가들이 살던 곳이다. 1910년 일제강점기 식민자본인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섰고, 광복 후 미군 숙소와 주한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다. 1997년 정부에 반환됐지만 이후 주인이 바뀌면서 폐허로 방치됐던 공간이다. 근 110년간 시민들과 동떨어진 공간으로 남아 있었던 셈이다.
서울시는 작년 말 서울시-대한항공-LH(한국토지주택공사) 간 3자 매매교환 방식으로 송현동 부지를 확보했다. 대한항공이 부지 소유권 이전을 위한 기반 조성(부지 평탄화 등) 공사를 하고 있다. 이날부터는 굳게 닫혀 있던 정문을 개방하고, 담장을 낮추는 작업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서울광장처럼 넓은 녹지광장에 최소 시설물만 배치해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3.7%에 불과한 서울도심 녹지율을 15%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과 연계해 대규모 녹지로 전환할 방침이다. 전체 부지의 26%(9787㎡)에는 ‘이건희 기증관’(가칭)이 들어선다.
공공기관, 대기업, 금융, 관광 등 도심 중추 기능이 집중돼 있는 광화문, 오래된 주거지가 밀집한 북촌, 청와대를 연결하는 대규모 녹지가 확보되면서 일대 상권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송현동 부지 인근 한 카페 대표는 “높은 담장에 막혀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는데 코로나까지 겹쳐 주인이 많이 바뀌었다”며 “최근 엔데믹으로 상권이 다시 활기를 찾고 있고 청와대 개방, 송현동 광장 조성 소식까지 호재가 잇달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일대 부동산 가격은 들썩거리고 있다. 북촌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거래 자체는 드물지만 호가는 이미 1.5배가량 뛰었다”며 “종로구 가회동 매물은 코로나19 이전 3.3㎡당 7000만원 선에서 지난해 5000만원으로 떨어졌다가 올 들어 1억~1억2000만원까지 부르고 있다”고 했다.
인근 주민들은 호재라고 반기면서도 유동인구 급증에 따른 주차난과 교통체증을 우려했다. 한 주민은 “송현동 부지는 인사동에서 청와대로 넘어가기 위한 입구로 볼 수 있다”며 “주말이면 북촌 일대가 주차장으로 변하는데 상권 활성화뿐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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