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스위치 하나로 켜고 끌 수 있다면

입력 2022-05-03 17:24   수정 2022-05-04 00:17

생(生)의 스위치를 언제든 켜고 끌 수 있다면 어떨까. 신체가 부서진, 사랑하는 사람의 뇌를 클라우드 서비스에 임시 저장해두고 적절한 신체를 찾았을 때 다운로드할 수 있다면. 그때도 나의 사랑은 내게 유일무이한 사람일까. 아니, 나라면 백업을 원할까.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사진)가 이런 질문을 담은 장편소설을 냈다. 제목은 《작별인사》. 2년 전 전자책 구독 서비스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하던 소설에 살을 붙여 재출간했다. 200자 원고지 420장짜리를 800장으로 불렸다.

이야기의 큰 뼈대는 그대로다. ‘휴머노이드’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지 탐구한다. 가까운 미래, 통일된 한국의 소년 철이는 인공지능(AI) 연구소 연구원인 아버지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철이는 어느 날 무등록 휴머노이드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서사 자체는 단순하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 영화 ‘그녀(Her)’ 등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소설을 다시 만지는 과정에서 묵직한 질문을 더했다.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차이’를 넘어 ‘인간의 삶은 지속될 가치가 있는지’를 묻는다.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 밀리의 서재에서 연재를 마친 직후 코로나19가 지구를 덮쳤기 때문이다.

작가가 소설을 고쳐 쓰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볼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다. 어떤 얘기를 추가했길래 책 두께가 두 배가 됐는지, 기존 스토리를 어떻게 다듬었는지 등을 원본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이전 판은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이름부터 철학적인 휴머노이드 ‘달마’가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것”이라며 철이와 삶의 가치에 대해 논쟁하는 부분이 보태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태어나버렸다. 그렇다면 인생이 의미를 가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소설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이고 무엇이 되고자 합니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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