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현금성 복지 정책을 “약탈의 정치”라고 규정했다. 이를 끝내는 게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과제라고 했다.
이 같은 선언은 불과 6개월 만에 헛구호가 아닌가 하는 의문 부호를 낳았다.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개 국정과제에 선심성 복지 공약이 대거 포함되면서다. 기초연금 인상, 부모 급여 도입, 병사 월급 인상이라는 3대 현금성 공약이 고스란히 국정과제에 반영됐다. 세 가지 공약을 이행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16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코로나19 손실 보상, 청년도약계좌 등 공약 이행에 드는 예산도 만만치 않다.
비용 효율성이 떨어지는 지역 공약도 구조조정 없이 국정과제에 대거 반영됐다. 2020년 기준 15개 지역 공항 중 5개 공항의 활주로 활용률이 1% 미만인데도 인수위는 “가덕도·제주 제2공항 등 권역별 거점공항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인수위 측은 공약 소요 예산을 대선 당시 추산한 266조원(5년간)에서 209조원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러나 재원 조달 방식을 ‘주먹구구’식으로 설명하는 인수위원장의 모습을 보면 선뜻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우리나라 예산이 600조원 정도인데 그중에서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 예산이 300조원, 인건비가 100조원이고 200조원 정도를 용도 변경할 수 있다”며 “그중 10%를 구조조정하면 20조원 정도 쓸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경제 발전에 따른 세수 증가가 1년에 20조원 정도로, 연간 40조원가량을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레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도 이보다 구체적인 예산안을 제시했다. 당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82조6000억원의 세입을 확충하고 95조4000억원의 세출을 절감한다고 밝혔고 세부 이행 계획도 공개했다. 박 전 대통령은 ‘공약 가계부’를 만들어 재원 조달 방안에 현실성을 더했다. 이에 비해 안 위원장은 면밀한 계산 없이 대략적인 윤곽만 제시한 셈이다.
‘포퓰리즘’을 배격하겠다고 한 윤 당선인이 명확한 재원 계획도 없이 현금성 공약을 대거 국정과제에 반영한 것은 6·1 지방선거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대로라면 “약탈의 정치”라는 비판은 윤 당선인 스스로를 옭아맬 수도 있다. 포퓰리즘에는 착한 포퓰리즘도, 나쁜 포퓰리즘도 없으니 말이다. 윤 당선인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심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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