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의 나라’ 미국에서 요즘 귤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3년 뒤인 2025년께 귤 소비가 오렌지 소비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합니다. 귤이 오렌지보다 까먹기 쉬워서입니다. 그러나 이면에는 기후와 질병, 농가 감소 등으로 오렌지 생산량 자체가 감소하는 현상도 있습니다.
2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최근 미국에서 만다린과 탠저린, 클레멘타인 등 감귤 소비량이 오렌지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만다린은 우리나라에서는 감귤로 불리지요. 탠저린은 오렌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가 작고 껍질이 부드러워 까기 쉽습니다. 클레멘타인은 유럽에서 주로 생산되는 귤 품종입니다.
세계 최대 농업은행인 네덜란드 라보뱅크 데이터를 보면 2020~2021년 기준 미국인 한 명당 연간 오렌지 소비량은 8.6파운드입니다. ㎏으로 환산하면 약 3.9㎏이지요. 인당 오렌지 소비량은 10년 전인 2012년에는 10파운드를 넘었지만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면 만다린으로 불리는 감귤류 소비량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인 한 명당 만다린 소비량은 3파운드(1.4㎏)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6.7파운드로 배 이상 늘었습니다. 올해는 7파운드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입니다.
라보뱅크는 2024~2025년께 귤 소비량이 오렌지를 추월하는 ‘골든 크로스’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 기간 미국인 만다린 소비량 전망치는 8.5파운드로, 오렌지 소비량 전망치(8.4파운드)를 처음으로 넘습니다. 브라질과 함께 세계 최대 오렌지 생산국으로 꼽히는 미국에서, 소비자들이 오렌지가 아닌 감귤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미국인들의 취향이 오렌지에서 귤로 바뀌는 가장 큰 원인은 편리함입니다. 껍질이 두꺼운 오렌지는 맨손으로 까기 힘듭니다. 과도를 사용해서 껍질을 다 잘라내야 먹을 수 있지요. 감귤은 쉽게 먹을 수 있고, 크기가 작아 양을 조절하기도 좋습니다.
부진한 오렌지 작황도 한몫합니다. 오렌지 주산지 중 한 곳인 플로리다에서 최근 감귤녹화병 등이 퍼지며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렌지가 제대로 익지 못하고 떨어지는 병입니다. 2011년 이후 오렌지 생산량이 정체되며 오렌지 재배농가가 감소한 영향도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올해 플로리다주의 오렌지 생산량이 3820만박스로, 세계 2차대전 시기인 1943년 이후 최저치일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 세계 오렌지 생산의 약 30%를 담당하는 브라질도 오렌지 작황에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감귤녹화병이 퍼진 데다 서리와 가뭄 등 날씨 때문에 오렌지 농사를 망쳤기 때문입니다.
농작물은 작황이 부진하면 가격은 오르고, 시장에 풀리는 작물의 품질도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미국 인터컨티넨탈 거래소(ICE)에 따르면 7월물 냉동 오렌지주스 선물은 1파운드당 177.75달러로, 연초 대비 21.3% 올랐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상승률은 55.6%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렌지에 비해 먹기도 쉽고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감귤류가 트렌드로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움직임일 겁니다.
미국 소비자들의 입맛 변화로 웃음짓고 있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미국에 감귤을 수출하는 남미 국가들입니다. 대표적인 국가는 칠레입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칠레는 북아메리카에 감귤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이어 페루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순입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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