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는 중국 패권주의에 공동 대응할 파트너"…삼성맨 출신 작가의 일침

입력 2022-05-04 10:30   수정 2022-05-04 15:08

삼성맨 출신의 만화 작가.

출판 업계에선 신일용 작가(사진·64)를 이렇게 부른다. 1984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그는 2009년 삼성SDI 상무로 퇴직할 때까지 섬유 공장을 짓기 위해, 플랜트 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해외에 물건을 팔기 위해 1년에도 십수 차례씩 해외 출장을 떠났다. 출장길을 떠날 때마다 보고 듣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2019년 근대 유럽사를 다룬 <아름다운 시대, 라 벨르 에뽀끄>를 그려낸 신 작가는 지난 1월 그의 두 번째 만화책을 펴냈다. 동남아시아 역사를 네 권의 책에 담아낸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 이야기>다.

신 작가는 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한국에 동남아의 중요성이 너무나 큰데도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를 근거 없이 깔보는 경향이 있다"며 "동남아 국가들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된 역사적 배경과 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2년에 거쳐 책을 썼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인식 속에 동남아가 단순히 물가가 저렴한 휴양지로 남아있으면 한국과 동남아의 교류가 확대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신 작가의 설명이다.

기업인 출신의 이 만화가는 "한국은 해외 투자 및 수출입 교역을 과도하게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며 "대외 교역 포트폴리오를 동남아 등으로 다양화하지 않으면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국제 정세 속에 한국 경제 전체가 장기적으로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과 중국 다음으로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평균 연령이 30세에 불과한 동남아의 지정학적·경제적 가치를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 작가는 동남아의 '유구한 역사'를 있는 그대로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동남아 지역은 수천년 동안 동양과 서양을 잇는 길목에서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세계의 모든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품었다"는 점에서 결코 업신여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 작가는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를 겪었던 것처럼 동남아 국가들도 식민지 지배와 독립의 경험을 갖고 있다"며 "오늘날엔 한국과 동남아 모두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도 공유하고 있는 만큼 한국은 동남아 국가들을 투쟁과 생존의 파트너로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 작가는 어쩌다 동남아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을까. 그는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싱가포르에 있는 삼성그룹 동남아 '지역본사'에서 주재원으로 일했다"며 "당시 1년의 절반 이상을 동남아 각지로 출장을 다니며 다양한 현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한국이 동남아로부터 배울 점도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2009년 삼성을 떠난 그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효성그룹의 정보기술(IT) 계열사인 갤럭시아커뮤니케이션즈(현 갤럭시아머니트리) 대표를 지냈다. 이후엔 세아창원특수강 전무 등으로 일하다 2018년부터 만화가로 전업했다.

신 작가는 "주변에선 대기업 임원까지 지낸 사람이 만화를 왜 그리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인으로 일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역사를 만화로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학자는 전문가로서 특정 사안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데 강점이 있겠지만, 기업인으로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지역을 탐험한 저는 저대로 역사를 폭넓게 조명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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