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내가 강원 전성시대 열 적임자"

입력 2022-05-04 11:46   수정 2022-05-04 13:32



이광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스로를 '미안할 일이 많은 정치인'이라고 설명한다. 민주 진영이 배출한 강원 지역의 몇없는 대형 정치인으로, 풍파가 가득한 정치인생 중 여러 차례 때론 자의로, 때론 타의로 직을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통으로 불리던 그는 2004년 국회에 입성했지만 재선 중이던 2010년에 의원직을 사퇴하고 40대의 나이에 강원지사로 당선됐다. 짧은 기쁨을 누리던 그는 약 1년만에 불법 정치자금 혐의로 형이 확정되면서 지사직을 내려놓았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을 받아 정계에 복귀하고, 21대 국회에서 원내 복귀에 선언했지만 이번에는 강원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다시 한번 의원 배지를 내려놓았다.

두번째 강원지사 도전에 나선 그를 한국경제신문이 3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 전 의원은 "40년 동안 정치를 했지만, 그 기간 동안 국가가 발전한 것에 비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크다"며 "강원도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꿈이 지사 출마의 이유"라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일자리와 교육, 복지 등 도민의 삶과 직결하는 요소들을 지표화해 도정의 평가 지표 및 예산 집행 근거로 활용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는 “생활 밀착형 정책과 정치로 강원도의 전성시대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진태 후보에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아직 본격적인 선거운동 시작하지 않은 만큼 역전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김 후보에 대해서는 "춘천 시민의 심판을 받은 정치인"이라는 비판을 남겼다. 아래는 이 전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11년만에 강원지사 두번째 도전에 나섰다. 어떤 생각으로 출마를 결정했나

고민을 많이 했다. 오히려 주변의 가까운 분들은 말렸다. 왜 편한 국회의원의 길을 냅두고 대통령 선거 후 어려운 시기에 편안한 길을 가려 하냐고 걱정해주는 이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저는 결국 강원도민들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 30대에 의원 시작할 수 있게 하고, 유죄 판결 후 가장 어려울 때 손을 잡아줬던게 강원도다. 이제 그 은혜를 갚아야야 한다. 강원도를 일으켜세워달라는 목소리에 내 운명을 걸어볼까 한다.

중앙당에서의 강력한 출마 요청도 있었지만, 그보다 제 마음 움직였던건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많은 후보자들의 전화였다. 이들은 "나를 생각하면 백번 나와달라고 하고 싶은데,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입이 안떨어진다"고 하더라. 그 말이 맘에 밟혔다. 강원도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민주당에서 출마 하는 사람들이 이만큼 나를 아낀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의 힘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대선에서 강원도의 거의 모든 행정단위를 국민의힘이 싹쓸이했다. 초반 여론조사도 김진태 국민의힘 후보에 뒤쳐지는 것으로 나온다. 이같은 민심에는 어떻게 대응할 계획인가

초반 여론조사를 좀 뒤지고 있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20%P 가까이 격차가 나는데 후보 지지율 격차는 5~8%P 수준. 그런데 저는 아직 본격적인 선거운동 시작하지도 않았다. 혼자 링 위에 뛰닥가 이제 육상 트랙에 올라간 것. 그런 상황에서 5P%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는 강원도민들이 희망과 미래를 선택할 거라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3번 떨어질 각오로 출마했다. 쉬운 선거일거라고 생각하고 나온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희망을 갖는 점이 있다면, 강원도에 계신 분들은 이광재가 일을 잘한다는 정평이 있는 것 같다. 실용주의자고 일을 잘한다. 제가 출마 의지 전혀 없었던 시점에도 출마 여론이 뜨거웠던건 그만큼 일 잘하는 도지사가 강원도를 일으켜 세워달라는 열망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 선거 전략은 결국 '강원도의 발전'이다. 도민의 삶을 삶을 보다 더 윤택하게 만드는 생활정치, 민생경제의 도지사가 되겠다. 그렇게 강원도를 땀으로 적시고, 강원도의 전성시대를 연 도지사로 기억되고 싶다.

▷강원도의 전성시대라는 말이 멋지지만, 바로 와닿지는 않는다

3가지 메시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자리 도지사, 교육 도지사, 효도 도지사라는 3개의 축을 중심으로 보면 강원도 전성시대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일자리 도지사는 우선 강원도의 주요 지역들을 3가지 권역으로 묶어 '대형 프로젝트'를 실시하려고 한다. 영동 지역에는 2조원을 투입해 '바다가 보이는 스위스'라는 이름으로 대형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 영서 지방 중 춘천에는 한예종 유치전에 뛰어들어 문화콘텐츠 단지를 구성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의료데이터를 가진 원주에는 의료기기 단지를 새로 만들겠다. 마지막으로 접경지역에는 군부대가 이전한 부지를 활용해 무기가 아닌 국방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교육 측면에서는 정말 강원의 학생들이 서울 학생들보다 부족함이 하나도 없게 하겠다. 우선 당선 이후 바로 교육감과 협의체를 구성해 협력할 수 있는 사안들을 찾겠다. 구체적인 교육정책은 교육감과 중앙정부의 역할이 크지만, 지사가 직접 나서서 해외 명문 특수학교를 강원도에 유치하면 학생이 몰릴 것이다. 아직 시기상조일 수 있지만, 인구 소멸 지역에는 특수목적고등학교를 허용해주는 것도 교육부에서 검토해야할 사안이라고 본다.

마지막은 효도 도지사다. 노인복지를 중심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우선 도지사가 되자마자 독거노인에 대한 전수조사를 해서 맞춤형 지원을 확대하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시내버스 무료화, 치매 노인에 대한 지원이나 이동식 빨래방, 경로당 무료 와이파이 설치 등 생활정치형 정책을 통해 노인들의 삶을 확실하게 개선하겠다.

▷강원도는 지리적, 안보적 특성 탓에 개발 및 정책에서 많은 불이익을 겪었다. 민주당에 제안한 5대 공약이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데, 구체적인 강원경제 활성화 목표(성장률, GDP, 경제규모 순위) 등을 제시할 수 있나

일자리, 교육, 의료 등 도민의 삶과 직결된 요소들을 지표로 만들어 매년 발표하려고 한다. 그 지표들을 통해 성과를 평가받고 싶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일하면서 우리 국민이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삶에서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고 실감했다. 국가소득은 세계 10위권 대국이 되었는데, 삶의 질은 31위라고 한다.

여의도 정치인들이 책임을 느껴야하는 한다. 그동안 여의도와 청와대에서 얼마나 GDP 신화에 매달려왔나. 국가는 잘살지만, 국민은 잘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이번 대선의 결과가 탄생했다. 삶의 질을 도정의 1순위로 두겠다. 지표를 세분화 시켜서 교육이 약하다고 나오면 교육 부문에 예산을 확대하고, 교육이 약하면 교육에 확대하겠다. 예산 집행의 명확한 기준을 만들면 정치에 대한 신뢰도 크게 회복될 것으로 본다.

일의 성과로 평가받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기업은 이익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평가를 받는다. 우리 정치도 개인의 성적표를 매기지 않는다면 그저 시끄럽게 싸우고, 막말하며 자기 진영에 충성하는 망국의 정치만 이어질 것이다. 이런 '죽음의 정치'를 끝내고 성과로 평가받는 생활정치의 시대를 도정을 통해 만들고 싶다.

▷전임 최문순 강원지사의 도정에 대한 평가 부탁드린다. 계승하고 싶은 장점과, 혁신하고 싶은 한계점으로는 어떤 것들을 꼽는지 궁금하다

최 지사는 정말 서민적인 정치인이다. 지사가 직접 나서서 도루묵도 팔고 감자도 팔고 했던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저는 그를 뛰어넘는 '찐서민 도지사'가 되고 싶다. 더 낮은 곳에서 더 많이 배우면서도, 필요할 때는 대형 프로젝트로 도민과 공무원의 가슴을 뛰게 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욕심이 최 지사와 나의 차별점이 아닌가 싶다.

앞서 거론한 영동 지방의 '바다가 보이는 스위스', 영서 지방의 '문화콘텐츠·의료산업 단지', 접경 지역의 '군수산업 단지' 프로젝트가 모두 실현된다면 누구도 강원도의 경쟁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저는 국가에는 부를, 도민에게는 소득을, 공직자들에게는 승진의 기회를 제공하는 정치인이 되겠다.

▷첫 강원지사 임기는 실형 선고로 채우지 못했고, 이번 국회의원 임기도 2년 정도를 남기고 물러나게 됐다. 지역구인 원주시민들로부터 비판을 다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10년 동안 원주 시민에게는 미안할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2년만에 그만두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한 마음 뿐이지만, 도지사로서 더 열심히 챙기겠다는 다짐밖에 드릴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원주시의 묵은 현안은 거의 해결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여주-원주 간 수도권 복선 전철 문제나 1군사령부 부지 이전 문제, 교도소 부지 이전 문제 등 주요 현안을 지사 및 의원 임기 안에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첫 지사 임기 중 구성한 토지기획단은 이후 강원도 개발의 큰 자산이 됐다. 수도권과 강원을 철도로 연결할 때 이들이 특히 큰 힘을 발휘했다. 지금 경기도가 용인에 SK하이닉스와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성하려고 하는데, 지자체가 땅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비해 강원도는 원주에 조성한 산업단지가 벌써 땅이 모자랄 정도로 공단이 꽉 찾다. 10년 전부터 선제적으로 땅 확보에 나선 것이 기반이 돼 성과로 이어진 것. 이렇게 주어진 기회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걸 이번에도 호소하겠다.

▷후보의 의원직 사퇴로 원주갑 보궐선거가 펼쳐질 예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의 차출이 거론되는데,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좋은 의미로 '여성 김종인'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할 말 다 하고, 배짱과 균형감각을 갖춘 정치인이다. 정말 좋은 자원이 우리 민주당에 들어왔고, 긴 안목을 갖고 민주당이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긴 안목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건, 당장 출마는 반대한다는 뜻인가

정치권에서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사람을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박 위원장을 바로 선거로 소모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선거에서 맞붙을 김진태 후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미 춘천 시민의 심판을 받았던 분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후보 자신도 노무현 정부 인수위의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때와 비교하자면 어느 정도 점수를 줄 수 있나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어 무얼 하고 싶은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인수위는 결국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도출하기 위한 조직이다. 그런데 윤석열 인수위는 내놓은 국정과제는 물론, 인사에서도어떤 의지를 느낄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인수위를 생각하면, 청와대 구성 발표하면서 동북아위원회와 균형발전위원회를 강조했다. 여기에 대통령의 어젠다가 있다고 내세운 것이다. 단순히 발표하고 그친게 아니라, 균형발전위원회 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29번이나 참석했다. 그러니까 세종시나 혁신도시와 같은 성과가 나올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인수위에서 나온 메시지라고 해봤자 기억에 남는 것은 대통령 업무공간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는 것과, 청와대를 축소하겠다는게 전부다.

청와대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메시지 자체에는 동의한다. 조금 더 첨언을 하자면, 정책실정이나 일부 비서관들은 세종에 배치하는게 필요하다고 본다. 대통령 직속 조직이 세종으로 내려가서 조정 업무를 수행하고, 대통령의 뜻을 수시로 소통해야 정부 업무가 보다 수월할 것이다. 지금도 청와대 근처에는 무수한 고위공직자들이 카페를 전전하고 있다. 이런 고급 인력들이 길거리를 떠돌며 시간을 낭비하는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 실장급 한명과 정책조정비서관 정도만 세종으로 내려가더라도 정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전범진/설지연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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