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린 왕자> 서문에 적힌 말이다. 도시의 어른들은 가끔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처럼 인생을 헤맨다. 돌아갈 길을 알려주는 건 다 자란 어른이 아니라 마음 속 어린 왕자다.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한 이야기, 줄글 대신 그림을 통해 전해지는 위로, 종이책을 만지고 펼칠 때만 누릴 수 있는 긴 여운···. ‘어린이만을 위한 책’으로 여겨지던 동화책·그림책을 읽는 어른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100년 후인 오늘. 한국 아동문학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납본통계에 따르면 국내 아동책 신간 발행 수는 2017년 6698종에서 지난해 8329종으로 늘었다. 교보문고의 지난해 아동책 판매량은 전년보다 11.0% 늘었다. 아동 인구가 급감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의아한 일이다.
단순히 양만 늘어난 게 아니다. 질적으로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수준이다. 이수지 작가는 올해 3월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노벨상처럼 특정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책 한 권이 아니라 아동문학에 대한 일생의 성취를 평가하는 셈이다. 2월에는 최덕규 작가의 <커다란 손>이 세계적 어린이도서상인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는 “현대인들은 하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활자와 영상을 접한다”며 “자극적이고 피로도 높은 매체에 질린 어른들이 종이의 여백, 생각할 공간이 많은 그림책을 찾아 읽고 있다”고 했다. 아예 지난해 말에는 <어쩌면 동화는 어른을 위한 것>이라는 책도 나왔다. 2017년부터 서울 금호동에서 운영 중인 카모메그림책방은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방’을 표어로 삼았다. 해외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가 토카르추크가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내는 등 아동문학의 경계가 흐려지는 중이다.
노인이나 외국인들에게 그림책은 ‘친절한 책’이다. 글보다는 그림이 많고, 글자도 크다. 김 평론가는 “노인들이 새로운 그림책 독자로 주목받고 있다”며 “손주들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그림책에 입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림책은 이제 어려서 읽기 시작해 평생 읽는 책이라는 얘기다. 그는 “다른 문화권에서 받아들이기에는 글이 많은 책보다 그림책이 유리하다”며 “한글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그림책은 진입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도서저작권 수출 계약 중 절반 이상이 아동 분야 책이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아동문학계에는 더욱 다양한 책들이 등장하고 있다. 길벗어린이 출판사는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소파 방정환이 쓴 동화에 그림을 더해 <4월 그믐날 밤>을 출간했다. 5월 초하루 축제(어린이날)을 준비하는 설렘과 기쁨을 다룬 책이다. 북뱅크 출판사도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해 가수 김창완이 만든 유명 동요 ‘개구쟁이’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방정환연구소, 어린이도서연구회, 어린이문화연대, 어린이청소년작가연대, 천도교중앙총부,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등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1일까지를 ‘어린이 문학주간’으로 삼고 각종 부대행사를 진행한다. 5월 한 달간 전국 40여개 문학관, 도서관에서는 아동문학 도서 전시와 공연 등 ‘아동문학 스테이지’를 운영한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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