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통화정책으로 막긴 역부족…주식·채권보다 부동산 유망"

입력 2022-05-04 17:40   수정 2022-05-12 15:18


지난 2일 오전 10시께 스웨덴의 대표 주가지수인 ‘OMX 30’이 갑자기 8% 급락했다. 스웨덴 증시의 이상 사태에 암스테르담과 파리 주식시장도 덩달아 3~5% 하락 전환했다. 씨티그룹의 주문 실수가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지수는 낙폭을 줄였다. 하지만 아찔한 변동성에 투자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발생한 ‘플래시크래시(단기간 자산 가격이 급락했다가 낙폭을 줄이는 현상)’는 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2022’의 한 화두였다.
미국보다 더 큰 유럽 에너지 쇼크
월가의 주요 투자자들은 주문 실수 하나에 유럽 주요 증시가 줄줄이 반응한 것은 “곧 깨질 것 같이 불안한 시장 상황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제이슨 브래디 손버그인베스트먼트 대표(CEO)는 한술 더 떠 “앞으로 플래시크래시보다 더 이상한 사건을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건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우크라이나 사태의 악영향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있어서다. “유로존의 간판 국가인 독일과 이탈리아가 경기침체로 ‘빠르게’ 향해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대체투자의 기회’ 세션에 참석한 빅터 코슬라 SVP글로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독일과 이탈리아 경제는 미국보다 러시아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며 “악재에 취약한 유럽 금융 시스템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 등이 거론되고 있는 건 유럽에 대한 투자자들의 시선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전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콘퍼런스에 나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자금이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 석유 금수 조치를 즉각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수 조치에 따른 유가 폭등, 생산성 둔화 등의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글렌 오거스트 오크힐어드바이저 CEO는 “에너지 쇼크는 유럽에 훨씬 더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유럽의 낮은 임금 인상률 때문에 소비자들은 물가상승 위험에 노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변동성 커져 M&A 위축
거시경제의 불안은 기업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투자 활동의 척도로 꼽히는 인수합병(M&A) 시장은 ‘일단 정지’ 상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초 이후 이날까지 글로벌 M&A 금액은 1조100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5% 줄었다. 올 들어 아마존의 액티비전블리자드 인수와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를 빼면 큰 거래가 많이 없었다. 케빈 셜록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매니징디렉터는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들은 투자를 꺼린다”며 “위기가 완화되기 전엔 M&A 시장의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복합 악재가 해소되기 시작하면 M&A 시장도 활력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됐다. 주역으론 일본 기업들이 떠오를 전망이다. 드루 골드만 도이체방크 글로벌 자문 부문 헤드는 “현재 ‘일시 정지’ 상태지만 새로운 정상화 시기가 올 것”이라며 “현금이 풍부한 일본 기업들이 M&A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땅한 인플레 해결책 없어
10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변동성과 인플레이션으로 주식에 대한 신중론이 고개를 드는 가운데 부동산에 대해선 ‘그나마 상황이 괜찮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열린 ‘부동산 시장 전망’ 세션에서 나온 얘기다. 120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며 부동산 억만장자로 불리는 배리 스텐리히트 스타우드캐피털그룹 회장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건설비용 증가와 공급 제한 때문에 주식, 채권보다 부동산이 안정적인 위치에 있다”며 “A급 입지의 사무실 건물과 공유오피스 빌딩을 좋게 본다”고 말했다. 투자회사 프레티움의 돈 뮬런 CEO는 “미국에선 부동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상태여서 매도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는 이어졌다. 제이슨 퍼먼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결책을 묻는 말에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며 “적정한 시점엔 통화 정책에 더해 재정 정책까지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케이티 콕 골드만삭스운용 CIO는 “인플레이션으로 향후 6~12개월간 소비지출이 둔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스앤젤레스=황정수/뉴욕=강영연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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