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만 해도 대부분 집에 마당이 있었다. 마당은 채움을 전제로 비워진 공간이다. 마당의 쓰임은 한 가지 목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어서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놀기도 하고, 관혼상제나 온갖 잔치가 벌어지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다목적이다. 이 마당에서 함께 뒹굴며 사람도 사귀고, 생각의 폭도 넓히고 다양성도 추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공간이 빼곡한 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변모했고, 남아 있는 여백의 공간이라고는 큰맘 먹고 움직여야 갈 수 있는 공원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변호사들의 집무 공간을 생각해 보면 여백의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로펌 사무실이 대체로 그럴 것으로, 나만의 공간을 확보해 주는 동시에 근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1인 1실의 박스형 룸이 복도를 따라 양쪽으로 배열된 형태다. 내부는 온갖 서류 뭉치가 산을 이루고 있고…. 그러다 보니 생각과 의식도 좁아지고 작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비단 로펌만 그러할까. 다른 조직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필자가 몸담은 로펌은 5년 전 창립 20주년을 맞아 39층 규모인 삼성동의 한 빌딩에 새 보금자리를 잡았다. 단순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폭을 넓혔으면 싶은 의도로, ‘열린 공간’에 특히 신경을 썼다. 최상층이 공동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스카이라운지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가벼운 책으로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는 도서관에서 인문학 책을 꺼내 읽기도 한다. 공간을 누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치를 재생산하기도 한다. 고객맞이 행사,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바자를 개최하고 미술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하나의 큰 공간이 여러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다. ‘마당’이 된 것이다. 제한된 환경에서나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 리프레시와 경험이 실현되는 열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지난 2년 남짓, 코로나19 탓에 그나마 제한적으로 열려 있던 마당마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일상으로의 회복이 시작되면서 마당이 다시 열리고 있다. 이 열린 공간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공원이 됐든, 아파트 놀이터가 됐든, 스카이라운지가 됐든, 마당을 찾아 나설 시간이 됐다. 해방감은 물론이거니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은 덤이다. 자, 다들 마당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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