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가 공짜로, 혹은 돈 주고 하던걸 이젠 돈 벌면서 하게 하자.” 요즘 플랫폼들의 구상입니다. 서비스 이용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주는 이른바 ‘X2E(~하면서 돈을 벌기)’ 비즈니스입니다.
이는 작년말 열풍이었던 플레이투언(P2E) 게임 얘기만이 아닙니다. 요즘엔 플랫폼 내 콘텐츠를 제작해 수익을 내는 크리에이트투언(C2E),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소비해 플랫폼 생태계를 넓힌 대가로 돈을 받는 라이크투언(L2E) 모델을 채택하는 서비스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기성 포인트 제도와는 달리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암호화폐 등을 활용해 보상을 실물경제와 연결하는 것도 특징입니다.
플로는 이를 통해서 올 4분기께 서비스 내 ‘L2E’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구조는 이렇습니다. 플로 플랫폼 안에 크리에이터 콘텐츠 공간을 들이고, 팬들이 크리에이터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만큼 토큰을 줍니다. A가수의 팬이 A의 음악이나 음성 콘텐츠를 일정 횟수 들을 때마다 ‘A토큰’을 받는 식입니다. A토큰을 모은 팬들은 이를 암호화폐로 바꾸거나, 아티스트가 플로 플랫폼 내에서 민팅(발행)한 NFT로 바꿔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단순한 포인트 제도와 큰 차이가 생깁니다. 보상을 서비스 플랫폼 바깥에서도 거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플로는 각 아티스트의 토큰을 모기업 SK스퀘어가 연내 발행을 추진 중인 ‘SK코인’과 연동할 예정입니다.
SK스퀘어는 11번가(e커머스), 티맵모빌리티(모빌리티), 콘텐츠웨이브(영상 콘텐츠), SK플래닛(포인트·멤버십)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어 이들 서비스에서 SK코인을 현금처럼 쓸 수 있을 전망입니다. SK코인을 e커머스 플랫폼 11번가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쓰거나, 티맵·웨이브 등의 서비스 구독료를 결제할 때 쓴다는거죠. 아티스트의 NFT는 세계 최대 NFT 거래 플랫폼 오픈씨(Open Sea) 등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됩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도 이런 흐름을 따르는 분위기입니다. 남궁훈 카카오 대표는 지난 4일 올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 중에 카카오톡을 ‘돈 벌 수 있는 서비스’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서로 전화번호나 아이디를 몰라도 접속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 서비스를 키우고, 이를 방장 선택에 따라 유료화 할 수도 있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남궁 대표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이 이용자들의 새로운 경제활동을 지원할 것”이라며 “정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거래하면서 돈을 버는 시스템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 계열 메타버스 제페토는 이미 C2E 경제 체계가 확고합니다. 서비스에 5분만 접속해봐도 이용자들이 디자인한 아이템이 주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 생태계를 공부해보겠다며 들어온 직장인이나 새롭게 아바타를 만든 ‘뉴비’를 제외하면 이용자 대부분이 피부가 창백한 8~9등신 아바타를 쓰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는 대부분 실제 유저들이 3D 모델링 솔루션을 활용해 만든 아이템으로 신체 비율과 피부색 등을 조정한 아바타입니다.
제페토는 아이템을 제작하는 이용자들에게 자체 가상자산 ‘젬’을 주고, 이를 실제 화폐로 환전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젬 5000개를 모으면 매월 마지막 주에 약 100달러 가량으로 바꿀 수 있는 식입니다. 이용자가 젬을 ‘현질’해 사들일 때는 젬 하나에 약 80원, 아이템 등을 제작해 출금할 때에는 하나에 약 20~30원 환율을 적용합니다. 아이템 판매 누적 건수가 100만건 이상인 한 상위권 창작자는 월 수익이 1500만원 안팎이라고 하네요.
게임기업 크래프톤도 최근 C2E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올들어 관련 조직을 신설해 콘텐츠 플랫폼 ‘3D월드 크립토 메타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크래프톤이 샌드박스 형식으로 게임 창작 틀과 도구를 제공하면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들어 올릴 수 있는 플랫폼입니다. 이용자들에겐 3D월드 크립토 메타버스가 게임 콘텐츠 유통망이 되는 셈입니다.
플로도 그렇습니다. 플로는 각 아티스트·크리에이터별 토큰의 가치를 다르게 매길 방침입니다. 이를 통하면 플랫폼 내 팬덤이 커질수록 보상 체계 가치가 높아지는 구조가 됩니다.
여기에 NFT를 활용하기 때문에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도 열심히 독점 콘텐츠를 만들어 낼 유인이 큽니다. NFT는 거래가 될 때마다 원제작자에게 5~10% 가량의 로열티 수익이 가기 때문입니다. 콘텐츠 창작자(아티스트)와 소비자(팬)의 활동 선순환구조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게 플로의 구상입니다. 기존 ‘스밍’ 이용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차트 상위에 올리는 보람 외엔 가져가는 것이 없었다면, L2E 생태계에선 소비자에게도 수익이 가는 양방향 흐름이 나온다는 겁니다.
보상을 걸면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를 제때 확보하기도 좋아집니다. 이용자들이 스스로 수많은 콘텐츠와 정보를 생산하기 때문인데요. 이를 통하면 이용자들의 니즈(수요) 변화와 콘텐츠 업데이트간 시차를 확 줄일 수 있습니다. 유망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윈윈’ 구조를 만들기도 쉽습니다. 크래프톤의 새 콘텐츠 플랫폼에서 유명 웹툰 IP 보유자가 자신의 IP를 활용해 게임을 만들어 유통하는 식입니다.
세계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도 이같은 식으로 자체 플랫폼에 게임 5500만 개 이상을 확보했습니다. 이용자가 메타버스 내에서 게임을 제작해 플랫폼에 팔면, 창작 대가로 플랫폼에서 통용되는 가상자산 로벅스를 받는 구조입니다. 작년 4분기 로블록스의 로벅스 결제액은 7억7010만달러(약 9750억원)에 달했다고 하네요.
요즘엔 플랫폼을 돈벌이 목적으로만 다룰 때 나오는 부작용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돈 벌기 위해 즐기고 창작한다’는 ‘2E’ 용어 대신 ‘~하는 한편 돈도 번다’는 ‘NE’ 용어를 쓰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는데요. 각 플랫폼이 서비스 본질을 지키면서 이용자들에게 수익까지 제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