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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증시 급락은) 곧 깨질 것 같이 불안한 시장 상황을 보여줬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컨퍼런스에서 제이슨 브래디 손버그인베스트먼트 대표(CEO)가 던진 화두였다. 회의 전날 유럽 증시가 요동친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지난 2일 스웨덴 대표 지수인 ‘OMX30’이 5분 새 8% 급락했다. 다시 회복세를 보인 OMX30은 이날 전 거래일 대비 1,2% 하락하는데 그쳤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프랑스 파리 주식시장에서도 순간 5% 하락했다. 유럽 증시에 ‘플래시크러시(단기간 급락후 낙폭이 회복되는 현상)’가 나타난 것이다.
플래시크러시 사태가 수습된 후 시티그룹은 유럽 증시 폭락의 원인이 직원의 주문 실수였다고 밝혔다. ‘팻 핑거(뚱뚱한 손가락)’라 불리는 오류다. 금융상품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거래량이나 가격 등을 입력할 때 빚어진 실수를 손가락이 두꺼워 컴퓨터 키보드를 잘못 누른 데에 빗댄 것이다.
증권업계에서 심심찮게 벌어지는 사고다. 2005년 일본 미즈호증권의 한 직원은 61만엔 상당의 제이콤 주식 한 주를 팔려다 주식 61만주를 1엔에 내놨다. 제이콤이 발행한 주식 총수보다 많은 물량이었다. 공매도 물량까지 회수하려 미즈호증권은 4000억원을 들여야 했다. 2012년 미국 금융업체 나이트캐피탈은 팻 핑거로 인해 4억 4000만달러(약 5572억원)을 손해 봤다.
국내에서도 팻핑거 사고는 빈번하게 벌어졌다. 2013년 12월 한맥투자증권이 프로그램 매매 과정에서 코스피200지수선물 옵션 가격의 변수인 이자율을 잘못 입력했다. 2분 만에 460억원을 잃었다. 30년을 이어온 한맥투자증권은 그렇게 무너졌다.
세월이 흘러도 팻 핑거 사고는 계속됐다.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오른 대체불가능토큰(NFT) 거래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지난해 12월 NFT거래소에서 한 판매자가 대표 NFT인 ‘지루한 원숭이 #3547’을 75이더리움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시세로는 30만달러(약 3억 8000만원)였다. 판매자가 실수로 0.75이더리움을 입력했고 곧장 팔렸다. 3억원을 순간에 날린 셈이다.
2018년에는 국내에서 팻핑거 사고가 두 건 발생했다. 그해 2월 케이프투자증권 직원이 코스피200 옵션을 이론가 대비 20% 가까이 낮은 가격에 주문했다. 실수로 비롯된 손실은 62억원. 당시 1년 순이익의 절반인 62억원을 하루 만에 날렸다. 두 달 뒤인 4월 삼성증권 직원은 배당금을 주식으로 착각했다.
미국에선 팻핑거 사고를 면밀히 조사한다. 가짜 주문을 넣어 주식 시장을 교란하는 ‘스푸핑(사기)’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강도 금융규제를 새로 제정했다.
영국 개인투자자 나빈더 사라로는 스푸핑 혐의로 2020년 1년간의 가택 구금형을 받았다. 2010~2014년 미국 시장에서 1조달러(약 1266조원) 규모의 급락을 일으켜서다. 당시 그는 주식 매매 프로그램을 활용해 가짜 주문을 수천 건 발생시켰다. 프로그램엔 주가가 급등하면 입찰을 취소하고 차익을 얻는 알고리즘이 적용됐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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