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지에서 ‘땅의 기운’을 느껴본 적 있는가. 어떤 여행지에는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고,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다. 경북 영주가 그렇다.
조선 명종 때 풍수학자인 격암 남사고(南師古) 선생이 영주 소백산을 보고 말에서 내려 절하며 “이 산은 사람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는 건 잘 알려진 일화다. 소위 기 받는 풍수 명당이라는 뜻인데, 귀가 얇은 탓인지 그 말 듣고 난 뒤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기력이 심히 쇠했다 싶을 때 영주 땅 한 번 밟고 나면 만사형통의 기운이 온몸에 샘솟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영주는 선비의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첫 사액서원이 영주에 자리하고, 곳곳에 멋진 풍광을 낀 정자가 많이 남아 있다. 선비들이 여가를 즐기던 누정문화를 따라 시간 여행을 해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 이 화창한 봄날 이만한 주말 여행지가 없다.
행선지인 무섬마을로 떠나기 전 가까이 금선정으로 방향을 돌리자. 영주의 좋은 땅 기운 이야기에서 금선정은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조선시대엔 ‘십승지’라는 전국 명당 10곳의 목록이 유행한 적이 있다. 십승지는 ‘세상 무슨 난리에 역병이 돌아도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곳’으로 소문났다. 십승지 중 첫째가 바로 소백산 자락 금선계곡 자리로 이곳에 세워진 정자가 금선정이다. 관광객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지만 소백산 비로봉 아래 ‘금계’라는 이름의 천이 흐르고 계곡 따라 늘어선 노송 풍광이 보는 것만으로도 ‘아! 좋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한때 무섬마을은 ‘물섬’으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에 붙인 ‘수도리’라는 한자 지명도 물 수(水), 섬 도(島)에서 가져왔다. 부르다 보니 입에 좀 더 편하고 듣기 좋은 소리, 물섬은 그렇게 무섬으로 불렸다. 내성천과 서천이 감싸안아 이름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이는 마을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조선 중기, 반남 박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으로 현재도 50여 가구가 생활하며 해우당고택·만죽재고택 등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이 잘 보존돼 있다. 강물 위에 실타래처럼 펼쳐진 낮은 외나무길로 마을을 들고나야 하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무섬마을 들어가는 외나무길은 요즘 젊은이들 사진 명소가 됐고 마을 안 고택은 잘 정돈해 관광객을 위한 한옥 스테이로 운영 중이다.
2016년 12월 영주댐이 준공되며 일대는 거대한 생태관광지로 바뀌었다. 광활하고 푸른 영주호를 따라 자전거도로가 길게 뻗어 있어 최근에는 자전거 트레킹하는 이들의 성지기도 하다. 영주호를 관통하는 용천루 출렁다리(용미교·용두교)를 건너면 고즈넉한 산책로가 등장하고, 천천히 걷다 보면 댐으로 수몰된 옛 기차역인 평은역을 복원한 평은역사와 영주호오토캠핑장 등이 나온다.
글=이선정 여행팀 기자
사진=한경매거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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