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국내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 약 650명(연간 기준) 중 현장에 바로 투입 가능한 석·박사급 전문 인력은 150여 명에 그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학부부터 박사까지 전액 학비·장학금 지원, 채용 보장’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5년간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에 나선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계약학과 전공생은 기업이 참여한 교과과정, 현장 프로젝트 실습 등을 거쳐 전문성을 쌓게 된다”며 “4~5년 뒤엔 졸업 후 즉시 경쟁력을 발휘할 인력이 다수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운영에 참여한 반도체 계약학과는 총 7곳이다. 지난해 3곳에서 올해 4곳 추가됐다. 삼성전자는 2006년 성균관대(70명), 지난해 연세대(정원 50명)에 이어 올해 KAIST(100명), 포스텍(40명)과 협력해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했다. 총 260명 규모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고려대(30명)에 이어 올해 서강대(30명), 한양대(40명)와 반도체 계약학과를 개설했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로는 중장기 전문 인력 확보 및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게 이들 기업의 공통된 반응이다.
두 기업은 내년 서울대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국가 산업 경쟁력 차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서울대 교수와 재학생들을 설득 중이다. 급기야 한국반도체산업협회가 업계 현실을 호소하며 서울대 측에 건의하고 나섰다. 어디든 꼭 한 곳엔 서울대에서 우수 인력을 확보할 기회를 달라는 제안이다.
업계는 수도권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 확대를 숙원으로 꼽고 있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소재 대학은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 확대가 불가능하다. 국가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이 규제를 풀어 반도체 관련 학과엔 예외를 두고, 인력 양성 토대를 마련해달라는 게 업계 요구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일부에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검토’가 포함됐다. 업계는 이 과제가 ‘검토’에만 그치지 않고 이른 시일 내 수도권 대학 정원을 늘려줄 것을 건의할 계획이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5월 ‘K반도체 전략’의 주요 내용으로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는 계획을 검토했다가 접었다. 국가 균형 발전 명분에 어긋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올해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30조원가량을 투자한 경기 평택 3공장 완공을 앞두고 있다. 삼성전자가 20조원을 투자하는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도 올 상반기 착공한다. SK하이닉스는 120조원을 투입해 연내 경기 용인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할 예정이다. 두 곳 모두 반도체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전언이다. 국내 업계에선 “경쟁국들은 반도체 인력 확보를 중요 과제로 삼아 양성 토대를 마련하는 데 비해 한국 정부는 무심하다”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가열되면서 반도체 인력난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 차원에서 기술 인력 육성 및 확보 방안을 짜지 않으면 ‘반도체 강국’ 자리를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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