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내년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학비 지원에 채용 보장까지 내걸고 전문 인력 ‘입도선매’에 나선 것이다. 반도체업계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반도체 전문 인력난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서울대에 내년부터 80명 정원의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해 5년간 공동 운영하자고 최근 제안했다. 학비는 물론 생활비로 쓸 수 있는 장학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삼성전자 채용도 보장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앞서 SK하이닉스 역시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 공동 운영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계약학과는 통상 대학과 기업이 1 대 1 계약을 하고 5년간 한시 운영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같은 경쟁을 벌이게 된 것은 반도체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 인력 확충을 위해 고민 끝에 마련한 우회 방안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과 연구소 등 반도체업계는 연간 1500여 명의 신규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도체 관련 학과 졸업생은 연 650여 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가 차원의 반도체 인력 양성 논의가 매번 구호에 그치고 있어 기업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미국 대만 등이 정부 주도로 인력 양성 기반을 조성하고 투자에 나서는 것과 비교된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분간 반도체 계약학과를 주요 대학에 신설해 ‘비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임시방편’인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 여건마저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작년에도 서울대에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을 비공식 타진한 적이 있다. 당시 서울대 교수와 재학생들은 “학문을 추구해야 하는 대학이 기술 인력 양성소가 되면 안 된다”고 반대해 무산된 바 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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