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5월 10일 08:2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식자재 업체 2위 회사인 아워홈이 인수합병(M&A)시장에서 뜨거운 매물로 떠올랐습니다. 장남 구본성(38.56%) 전 부회장, 장녀 구미현(20.06%) 주주, 차녀 구명진(19.60%) 전 캘리스코 대표, 구지은(20.67%) 부회장 네 가족간 '가업·장자 승계, 가족기업'이란 틀 안에서 경영된 회사가 처음으로 자본시장의 '야만인들'을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아워홈 매각의 현황과 쟁점을 Q&A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족간 화해, 친족들의 중재 가능성 등 예상할 수 없는 변수를 제외하고 철저히 자본시장의 관점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정말 경영 복귀를 시도하는 걸까?
이번 분쟁의 중요한 관전 요소 중 하나는 아워홈의 '이사회 규정'입니다. 현재 아워홈을 이끌고 있는 구지은 부회장은 지난해 6월 보복운전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구본성 전 부회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회사 경영 전면에 서게 됩니다. 구 부회장의 우군이던 구명진 전 대표는 물론, 직전까지 구 전 부회장 편에 섰던 장녀 구미현 씨가 돌연 구 부회장을 지지하면서 '반란'에 성공했습니다. 주주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낸 구 부회장은 자신이 선임한 21인의 이사진을 선임한 데 이어 곧바로 구 전 부회장의 해임을 통과시킵니다.이사회를 장악한 직후 구 부회장은 기존 주주들이 보유 지분을 매각하려면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는 '특별결의'를 거쳐야한다고 회사 이사회 규정을 변경합니다. 기존까진 이사 과반의 동의를 얻으면 가능했지만, 이를 강화한 것입니다. 일부 폐쇄형 비상장사가 이같은 규정을 두는데, 주주들이 기존 경영진의 경영권을 위협하거나 비우호적인 곳에 지분을 팔아서 경영진을 흔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어책으로 많이 쓰입니다.
구 전 부회장은 보복운전 등 잇단 구설수로 경영에서 물러난 데다 대표이사직에서도 해임된 상황입니다. 올해 65세로 적지않은 나이인만큼 상속을 고민해야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비상장을 유지하고 있는 아워홈의 지배구조상 구 전 부회장의 자산은 회사 지분이 전부입니다.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이 아니다보니 구 전 부회장은 이번에 보유지분을 모두 팔아서 '목돈'을 마련하는 의사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구 전 부회장 입장에선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구 부회장과 이사회의 허락을 얻어내서 자신의 지분만 매각하거나 아예 자신이 주도해 이사회를 장악한 후, 매각 절차를 주도하는 방법이 대표적입니다. 구 전 부회장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기존 이사회 정족수의 3분의 2를 단번에 확보할 수 있는 48인의 사외이사를 선임하겠다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임직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구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한 이후에 돌연 다시 경영에 욕심을 내거나 매각 의사를 철회할 가능성도 남아있습니다. 무엇보다 매각 절차를 밟고나서 원하는 가격을 제안받지 못했을 경우엔 경영에서 다시 손을 떼고 구 부회장에게 맡길지, 자신이 회사를 운영할 지 여부도 미지수입니다.
다른 기업들의 경우 이같은 분쟁을 막기 위해 회사 정관에 이사 수의 상한선을 두는 조항을 넣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회 수는 20인으로 둔다'는 규정이 있었다면 구 전 부회장 입장에선 기존 구 부회장 측 이사를 해임하거나 기존 이사의 임기가 만료될 때까진 자신 편 이사를 회사에 선임할 수 없는 것이죠. 반대로 구 부회장 입장에서도 이사수 상한 조항이 있었다면 자신을 지지하는 21인을 이사진에 편입시켜 이사회를 장악해 구 전 부회장을 몰아내는 반란을 꾀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사 수 한도를 두는 정관 변경은 기존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하는 특별결의 사안입니다. 지분 38%를 보유한 구 전 부회장이 반대할 경우 구조적으로 통과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장녀 구미현 씨는 왜 구 전 부회장 편으로 돌아섰을까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구 전 부회장의 합리적인 목적은 자기 지분의 현금화입니다. 반대로 구 부회장 입장에선 구 전 부회장의 지분은 언젠가 해결해야할 골칫거리였습니다. 보유 지분율(38%)으론 경영권을 행사할 순 없지만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할 회사의 주요 의사결정에 사사건건 반대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에 매각될 경우 구 부회장 입장에선 더욱더 걸림돌이 될 수 있었던 상황입니다. 올해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 이전까지 구 전 부회장은 "경영을 도울 합리적 파트너를 찾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대외적으론 회사에 지분매각을 둔 '협조'를 얻으려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올해 3월 아워홈의 정기주주총회 직후 구미현 주주가 보유 지분을 매각하기로 마음이 돌아서면서 판도가 모두 뒤바뀌었습니다. 장녀인 구 씨는 아워홈 일가 중 경영에 참여하지 않아온 유일한 인물입니다. 역시 60대를 넘어선 나이를 고려할 때 자기 자산의 전부와 마찬가지인 아워홈 지분의 현금화를 고려할 시기였습니다.
구 씨 입장에선 오빠인 구 전 부회장이 먼저 자신의 지분을 팔아버리면 입장이 다소 난처해질 수 있습니다. 20%남짓의 지분율을 추가적으로 원할 인수후보군이 대폭 줄어드는 데다, 경영권을 지켜야 할 구 부회장 측에서 매각 자체를 승인할 가능성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상장(IPO)등을 통해 자신의 지분을 현금화해줄 시기를 기다리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큰 상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구 부회장과 함께 지분을 팔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회라는 점이 구 씨의 마음을 돌린 것으로 점쳐집니다. 자신의 몫을 극대화한다는 판단 아래서 이번 기회를 놓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구 씨 입장에선 또하나의 꽃놀이 패가 있습니다. 우선 경영권 매각을 전제로 매각 절차를 진행해서 '시가'를 받아본 후 여기에 더 일부 더 금액을 얹어서(혹은 자매니까 조금 할인해서) 구 부회장에게 역으로 매각을 제의할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에 남은 하나의 미스테리가 남는 건 왜 구 씨가 지난해 6월 구 부회장의 편을 들었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구 전 부회장이 구씨에 보장한 사안들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내수 캡티브 위주의 회사가 구설수를 돌파하려면 일단은 새 경영진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란 정무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같이 자연스럽게 경영권 매각으로 흐르는 판세를 모두 구 씨가 설계한 것이란 농담섞인 가설도 나옵니다.
▶법적으로 매각 막을 방법은 없어
최근 일각에선 구미현 씨가 돌연 "임시주주총회를 요청한 적 없다"고 회사에 내용증명을 보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각을 둔 균열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전평도 나왔습니다. 다만 여기엔 다소 오해가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상법상 비상장사의 경우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이사회에 임시주주총회를 신청할 수 있고, 이사회가 소집 절차를 밟지 않으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총회를 소집할 수 있습니다. 최근 법원은 이같은 주주총회신청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즉 어디까지나 구 전 부회장 단독으로 신청할지 두 주주가 함께 신청할 지 행정적인 문제일 뿐 이미 요건을 충족한 이상 법원의 판단과는 무관한 '해프닝'인 셈이죠.현재로선 법적으론 구 부회장이 구 전 부회장 측의 지분 매각 시도를 막을 방법은 없어보입니다. 구 전 부회장과 구 씨는 현재까지도 매각주관계약을 유지하고 있어 매각 의사는 뚜렷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 부회장은 오는 6월로 예상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자신 측 이사진을 편입시켜 지분 매각을 둔 걸림돌을 모두 치우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7~8월 각 잠재 후보들로부터 가격을 제안받아 검토한 후 최종 10월경이면 매각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사 실사 이후 '시가'가 형성되면 구미현 씨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입니다. 구 전 부회장과 함께 팔 수도 있고, 앞서 설명한 대로 구 부회장에도 일정 가격을 적어 역제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천억~수조원의 현금을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열린 셈입니다. 우선 회사의 경영권 지분을 전부 확보하는 전략(바이아웃)을 펼 수도 있지만, 구 씨의 지분을 대신 매입한 후 구 부회장 편에 백기사로 서서 수익률을 거두는 전략을 펼 수도 있습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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