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하벙커와 안보 논란

입력 2022-05-06 17:34   수정 2022-05-07 00:09

서울과 그 인근에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지하벙커가 여럿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5년 전시대피실로 만든 청와대 지하벙커(국가위기관리센터)는 각급 부대는 물론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 전국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와도 연결돼 안보와 재난·재해를 실시간으로 점검할 수 있다. 북한의 군시설 움직임도 거의 파악이 가능하다.

서울 용산 국방부와 바로 옆 합참 지하에 있는 벙커는 육·해·공군 주요 지휘부는 물론 최말단 부대까지 거미줄처럼 연결한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CCS)’가 구축돼 있다. 미국 합참, 한미연합사 등과 군사 정보와 작전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연합전구지휘통제체계’, 화상지휘시스템도 갖췄다.

관악산 지하에 있는 일명 B-1 벙커는 전시행정부가 들어서는 곳이다. ‘데프콘(전투준비태세) 2’가 발령되면 대통령과 청와대 주요 참모, 행정부처 간부들, 국방부와 합참 지휘부가 이곳에 모인다. 전시 지휘와 국가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KJCCS와 ‘전술지휘합동지휘통제체계(C4I)’ 등 첨단 지휘시설을 갖췄다. 길이 900m, 너비 150m로 웬만한 마을 크기다. 1000여 명이 수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다. 청계산 지하엔 주한미군의 비밀 지하벙커 ‘탱고’가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실 용산 이전을 선언한 후 지하벙커가 안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청와대 지하벙커와 새 대통령이 활용할 국방부·합참 지하벙커의 기능이 달라 위기 관리에 구멍이 뚫린다고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군은 국방부와 합참 지하벙커는 청와대 벙커보다 몇 배 큰 데다 지휘 기능이 훨씬 뛰어나 기우(杞憂)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국방부에는 없는 재해재난안전통신망도 수신장치를 달아 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설령 국방부 벙커에 이상이 생겨도 실제 작전 지휘가 이뤄지는 합참 지하벙커가 24시간 가동돼 청와대 이전 과도기 작전 지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군의 입장이다. 국방부와 합참 건물은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전자기파(EMP) 공격, 진도 8.38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어 청와대보다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현 정권 임기 종료 직전까지 안보 공백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새 정부에 대한 발목잡기로 비친다. 다만 윤 당선인 측도 당분간 자택 출퇴근에 따른 안보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필요는 있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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