훨씬 큰 손해를 본 투자자는 따로 있다. 한전 3대 주주 국민연금이다. 문 정부 출범 직전 6.5% 지분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은 한전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대규모 물타기’까지 시도했다. 그래도 5년 새 1조원 안팎(평가손실 포함)을 까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기업을 겨냥한 국민연금의 ‘압력’은 이와 정반대였다. 국민연금은 2019년 말 임원 해임도 가능케 한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까지 제정해 경영 개입을 크게 늘렸다. 2020년에만 기업가치 훼손 등을 명분 삼아 전년보다 83% 급증한 110개 기업과 ‘대화’를 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이었음에도 횡령·배임 혐의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연임안을 반대해 무산시킨 적도 있다. 산업재해 관리 부실을 명분으로 포스코에, 사모펀드 부실 판매를 명분으로 4대 금융지주에, 공익 사외이사를 제안하려는 시도도 했다. 한 상장기업 임원이 “기업·주주가치 제고라는 수탁자 책임 원칙은 일반 기업에만 엄격하고 한전엔 느슨하다”며 “국민연금이 권력 눈치를 보며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할 정도다.
새 정부는 곧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문재인 정부가 방치했던 국민연금 개혁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2055년 국민연금 고갈이 예고돼서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다. 연금개혁을 하더라도 글로벌 기준에서 가장 엉망인 현재의 국민연금 기금운용 지배구조부터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 해외 주요 연기금이 모두 그렇듯, 민간 금융·운용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투자의사 결정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국민연금이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안정적 수익 확보만을 위해 국민 노후재산을 굴리고 주주권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연금사회주의’ 같은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도 없애고 국민연금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그래야 연금 개혁으로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될 국민과 기업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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