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이 먼저다

입력 2022-05-09 00:12   수정 2022-05-09 00:13

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전력 주주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문 정부 출범 직전 4만5800원이던 한전 주가는 지난 6일 2만2850원으로 정확히 반토막이 났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전기요금 동결로 적자가 폭증한 탓이다. 한전 소액주주들이 “탈원전을 그만두고 전기료도 인상하라”며 시위도 하고 배임 혐의로 경영진을 고발까지 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훨씬 큰 손해를 본 투자자는 따로 있다. 한전 3대 주주 국민연금이다. 문 정부 출범 직전 6.5% 지분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은 한전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대규모 물타기’까지 시도했다. 그래도 5년 새 1조원 안팎(평가손실 포함)을 까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에만 관대한 국민연금
하지만 국민연금은 소액주주와 다른 행보를 보였다. 한전 적자가 폭증해 기업·주주 가치가 훼손돼도 탈원전 정책에 문제를 제기한 적도, 정부 정책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한전 이사 선임에 반대한 적도 없다. 한술 더 떠 국제 의결권 자문사 권고까지 어기며 기업 경력이 전무한 ‘친문(친문재인) 낙하산’ 이사 선임을 찬성한 적도 있다. 한전이 문 대통령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해 수천억원이 들어가는 한전공대 설립안을 의결해도 국민연금은 침묵했다.

민간 기업을 겨냥한 국민연금의 ‘압력’은 이와 정반대였다. 국민연금은 2019년 말 임원 해임도 가능케 한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까지 제정해 경영 개입을 크게 늘렸다. 2020년에만 기업가치 훼손 등을 명분 삼아 전년보다 83% 급증한 110개 기업과 ‘대화’를 했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이었음에도 횡령·배임 혐의로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 연임안을 반대해 무산시킨 적도 있다. 산업재해 관리 부실을 명분으로 포스코에, 사모펀드 부실 판매를 명분으로 4대 금융지주에, 공익 사외이사를 제안하려는 시도도 했다. 한 상장기업 임원이 “기업·주주가치 제고라는 수탁자 책임 원칙은 일반 기업에만 엄격하고 한전엔 느슨하다”며 “국민연금이 권력 눈치를 보며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할 정도다.
정부에 휘둘리는 지배구조
이런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독립성·전문성 없이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구조라서다. 20명 위원은 운용 전문가 한 명 없이 정부 및 각 이해관계 대표자만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부 쪽 인사(최소 8명)와 친정부 성향 시민단체 출신을 합하면,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제정 때처럼 정부만 원하면 모든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다.

새 정부는 곧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문재인 정부가 방치했던 국민연금 개혁에 본격 나서기로 했다. 2055년 국민연금 고갈이 예고돼서다.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다. 연금개혁을 하더라도 글로벌 기준에서 가장 엉망인 현재의 국민연금 기금운용 지배구조부터 먼저 뜯어고쳐야 한다. 해외 주요 연기금이 모두 그렇듯, 민간 금융·운용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투자의사 결정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국민연금이 정치·사회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안정적 수익 확보만을 위해 국민 노후재산을 굴리고 주주권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연금사회주의’ 같은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도 없애고 국민연금 신뢰도 회복할 수 있다. 더 중요하게는, 그래야 연금 개혁으로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될 국민과 기업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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