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요지다. 전국 수백 곳의 사업장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 다툼이 벌어지면서 추가 인건비 부담이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경영계의 우려 속에 나온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 법리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이른바 ‘통상임금 대란’은 그렇게 ‘교통정리’가 됐다.
통상임금이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은 물론 연차휴가 보상금 등을 책정하는 기준이다.
그로부터 8년여가 흐른 지난 4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금융감독원 전·현직 직원들이 “상여금을 포함해 통상임금을 다시 계산하고 추가 지급하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고등법원이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미 제공한 근로의 대가에 대해 재직요건(고정성 결여)을 이유로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효”라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대법원 판결에 ‘반기’를 든 하급심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세아베스틸 사건 등 고정성 요건을 부정하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고, 조만간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기존 판례를 뒤집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경영계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원합의체까지 갔던 대법원 판결이 10년도 안 돼 또 바뀌면 어떡하냐”는 불만이다. 사실 2013년 대법원 판결은 노사 양쪽 입장을 종합적으로 아우른 결과였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근로자의 임금을 보호하기 위해 정기·일률성이라는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별도의 지급요건이 없어야 한다는 고정성과 신의칙을 부여함으로써 기업의 ‘숨통’도 틔워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산업현장에서는 지난한 노사 협상이 벌어졌고 안정을 찾기까지는 수년이 걸렸는데, 법적 안정성이 다시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친노동’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 집권 5년간 경영계에선 모든 것을 사법부 판결로 해결하려는 ‘사법 만능주의’를 넘어 사법부 판결이 아예 경영 자체를 위협하는 ‘사법 리스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법리 논쟁과는 별개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을 10년도 안 돼 뒤집는 ‘거친’ 하급심 판결이 이런 사법 리스크를 더 키우지 않을지 걱정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