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에너지 정책이었습니다. 2017년 6월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한다"는 선포와 함께 신규 원전건설은 전면 백지화됐고, 기존 원전을 계속 운전하는 것도 금지됐습니다.
원전 밀집도, 안전성 등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기까지 다양한 배경이 있었겠지만, 국가 안보와도 맞물려 있는 에너지 정책 변화가 '너무 급진적'이라는 우려는 지속적으로 제기됐습니다. 결국 지난 5년간 산업적인 측면에서 세계 최강 수준이던 한국 원전 생태계는 쑥대밭이 됐습니다.
원전 기술 인력들은 현장을 떠났고, 관련 기업들은 휴·폐업했으며 원전 관련학과 학생들 600여명이 자퇴했습니다. 탈원전 정책 시행 이후 원전 수주 실적은 사실상 '제로'입니다.
차기 정부는 이러한 탈원전 정책을 뒤집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습니다. 지난 3일 대통력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원 발전량 비중에서 원전의 비중을 높이고 2030년까지 총 10기를 수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인수위원회의 '탈원전 정책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에 관한 액션 플랜'에 따르면 정부는 원전수출전략추진단(가칭)을 연내 신설할 계획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관계부처 차관과 한국전력공사·한국수력원자력 등 관련 공공기관 사장, 관련 기업 사장이 참여하는 민관 합동 원전수출 '원 팀'입니다. 여기엔 두산에너빌리티(옛 두산중공업) 사장도 직접 참여할 계획입니다.
원전수출전략추진단의 위원장은 산업부 장관이 맡을 예정이며 위원에는 유관부처(과기부, 외교부, 국방부, 국토부, 중기부 등) 차관, 공공기관(한전, 한수원,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사장 및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이 포함됐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는 정연인 사장이 참여하는 방안이 유력합니다.
문건에 따르면 현재 한전, 한수원으로 흩어져 있는 원전 수출체계 기능을 재검토해 유기적인 업무분담 체계로 개편합니다.
또 액션 플랜 중 '차세대 원전 기술·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세부 각론에 의하면 차기 정부는 △2024년까지 원전을 활용한 수소생산 기반연구를 진행하고 △미국 뉴스케일 등 해외 SMR 실증에 국내기업 참여를 적극 지원하며 △SMR 이후 미래 원자력 기술(제4세대 원자로, 핵융합에너지) 개발도 지원할 예정입니다.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전기 출력이 300MW(메가와트) 이하인 소형 원전을 뜻합니다. 출력 조절이 가능해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어 탄소중립 시대에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서 개발 중인 SMR 모델은 70여개인데 그 중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설계인증 심사를 통과한 곳은 미국 뉴스케일의 SMR이 유일합니다. 새 정부가 뉴스케일 등 해외 SMR 실증에 국내 기업들의 참여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배경입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SMR 중점 수출국, 경쟁 노형(모델) 동향, 상품성 제고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수출전략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한국형 SMR 모델을 독자 개발하고 수소를 생산하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마련합니다. SMR은 원자력을 통해 생산된 고온의 수증기를 활용해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산업부는 2024년까지 수소생산 관련 기반연구를 진행하고 과기부와 공동으로 원전 안전성을 강화하는 핵심기술을 개발합니다. 2024년까지는 대형 방사선시설이 있는 곳에 지역별 융복합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목적지향형 R&D 등을 포함한 대형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계획에 포함돼있습니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 안보와 맞물려 있습니다. 성급하게 시행돼서도, 비전문가들의 견해에 치중돼서도, 경제성이 조작돼서도, 갑자기 앞뒤가 달라져서도 안 됩니다. 급진적인 정책보다는 안정적인 장기 로드맵이 필요합니다. 차기 정부는 탄소중립 시대 합리적인 에너지 정책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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