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각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지면서 세계 벤처투자 업계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유동성이 줄어들자 투자 규모가 축소됐고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도 희미해졌다는 분석이다. 벤처캐피털업계에선 '제2의 닷컴버블'이 도래할 거란 우려도 커졌다.
금리 인상 기조에 줄어든 벤처투자
7일(현지시간) 스타트업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성사된 벤처투자 총액이 470억달러(59조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 빠졌고, 지난 3월과 비교해도 10% 감소한 수치다. 지난해 2월 이후 1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크런치베이스는 “지난해 뜨거웠던 투자 열기와 올해는 딴판”라며 “올해 1분기부터 투자 둔화가 장기화할 조짐이 보인다”고 분석했다. 올해 1분기부터 벤처투자업계의 침체가 예견됐다. 금리를 낮추고 정책 자금을 통해 현금 유동성이 풍부했던 지난해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스타트업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가 내놓은 올해 1분기 스타트업 분석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타트업 투자유치 금액은 총 1439억달러(약 183조원)로 전 분기 1779억달러(약 229조원)에 비해 20% 감소했다.
촉망받는 스타트업도 돈줄이 끊겼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메가라운드 펀딩’(투자목표액 1억달러 이상) 횟수는 지난해 4분기보다 30% 감소했고 투자 총액은 59% 줄었다. 메가라운드 펀딩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이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금이 대거 몰려 투자유치 한 번에 1억달러 이상 조달하는 사례를 일컫는다.
돈줄이 마르자 스타트업도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미국의 핀테크 기업 온덱은 지난 3일 총직원의 25%를 정리해고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식품 스타트업’으로 불리던 리프도 지난 6일 직원의 5%를 내보낸다고 발표했다. 2020년 7억달러 규모의 투자유치에 성공한 지 2년만에 침체기에 접어든 것. 미국 개미들의 성지라 여겨지던 무료 주식중개플랫폼 로빈후드도 300여명의 직원들을 잘랐다.
“투자금 어떻게 회수하나” VC도 비상
비상이 걸린 건 세계 벤처캐피털(밴처투자사)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풍부한 유동성에 돈잔치를 벌였던 상황과 달리 엑시트(출구전략) 가능성이 점차 낮아져서다. 스타트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들은 보통 3가지 방식으로 투자자금을 회수한다. 스타트업을 성장시킨 뒤 각국 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IPO)를 시행하거나, 대기업에 인수합병(M&A)을 노린다. 두 방식 모두 신통치 않으면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활용해 우회상장을 노리는 방법도 있다.
올해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줄어 세 방식 모두 침체하는 상황이다.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스타트업들의 IPO(SPAC상장 포함) 건수는 지난해 4분기 296건에 비해 45% 감소한 164건으로 집계됐다. 세계 증시가 하락세에 접어들자 스타트업 대표들이 기업공개를 지연시킨 결과다.
세계적으로 M&A 시장도 둔화되는 추세다.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1분기 M&A 건수는 6409건, 인수합병 합계액은 총 9776억달러를 기록했다. 금액으로는 전분기 총액(1조 3110억달러)에 비해 25% 줄었고, 횟수도 28% 빠졌다.
투자금 회수 시장이 난항을 겪자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제2의 닷컴버블이 찾아온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99년처럼 신생 IT기업들 실적이 급감하며 대량해고가 잇따르고, 투자금을 회수하려 헐값에 지분을 대량 매도해 경기침체가 찾아올 것이란 전망이다.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20여년 전과 달리 IT스타트업들의 서비스가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는 “이미 스타트업들의 기술이 필수재처럼 우리 삶에 얽혀있다”며 “아마존, 이베이, 페이팔의 성장세가 이를 증명했다. 유동성이 줄어도 1999년의 닷컴버블이 재연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