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쩐의 전쟁’이 가장 뜨거운 산업이다. 소비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매년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국내 OTT 시장은 넷플릭스와 디즈니+, 애플TV 등 글로벌 기업들과 웨이브(SK텔레콤), 시즌(KT) 등 국내 대기업 간 대결 구도가 이어진다. 다음달엔 글로벌 미디어 그룹인 파라마운트도 상륙한다.
그런데 이런 공룡들의 틈바구니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타트업이 있다. 왓챠가 주인공이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바탕으로 벌써 6년째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대규모 데이터를 활용한 콘텐츠로 반격에 나서고 있다. 왓챠의 약진이 OTT 시장 판도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시맨틱 에러’는 남자끼리 사랑을 다룬 일명 BL(Boy’s Love) 장르 드라마다. BL 장르는 최근 여성 소비자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고 왓챠가 단순히 인기에만 편승해 ‘시맨틱 에러’를 만든 것은 아니다. 다른 업체처럼 콘텐츠 제작 전에 수많은 검토 과정을 거쳤다. 다만 콘텐츠 접근 방식이 경쟁사와 달랐다.
왓챠는 인공지능(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동원했다. ‘시맨틱 에러’와 비슷한 장르의 콘텐츠인 ‘진정령’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 등의 주요 시청 연령대, 시청 데이터 등을 철저히 분석했다. 20~30대 여성이 주요 타깃층이라는 점, 재생 시간이 기존 드라마보다 짧다는 점, ‘N 회차 재생(반복 재생)’이 많다는 점 등을 따져서 ‘시맨틱 에러’를 제작했다. 김혜정 왓챠 마케팅 이사는 “기본적으로 콘텐츠는 완성도와 참신함 등이 핵심이지만 여기에 데이터를 활용해 기존보다 좀 더 흥행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왓챠의 분석 기술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왓챠의 시작은 콘텐츠 리뷰 및 추천 서비스인 ‘왓챠피디아’였다. 왓챠피디아는 2011년부터 소비자들이 각종 콘텐츠에 남긴 별점과 후기를 모았고 이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한다. 왓챠피디아는 6억5000만 개 이상의 콘텐츠 이용자 평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관련 데이터를 확보한 기업을 찾기 어렵다.
왓챠는 데이터 분석 수준을 높이기 위해 최신 인공지능(AI)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윤정민 왓챠 머신러닝팀장은 “좋은 AI 모델이 나오면 왓챠 시스템에 맞게 커스터마이즈해 추천 엔진을 진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왓챠는 구글의 AI 언어모델 버트(BERT)도 접목했다. 버트는 2018년 공개 당시 ‘AI의 언어 이해·처리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이터의 순서와 맥락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게 강점이다. 윤 팀장은 “막연히 ‘이 작품은 뜨겠지’라는 기대가 아니라 광범위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 도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성공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왓챠는 올해 자체 제작 콘텐츠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다큐멘터리 ‘한화이글스:클럽하우스’, 예능 프로그램 ‘조인 마이 테이블’, 드라마 ‘최종병기 앨리스’ 등을 선보인다. 대부분 AI 분석으로 제작한 콘텐츠다. 업계에서는 왓챠의 이런 전략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지도 주목하고 있다. 왓챠의 매출은 지난해 708억원으로 1년 전보다 86.1% 늘었다. 하지만 영업 손실도 같은 기간 154억원에서 248억원으로 증가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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