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오늘 새벽 3시 30분에 종료됐습니다. 9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차수 변경을 통해 날짜를 넘기는 등 15시간 넘게 동안 이어졌지만,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를 채택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한 후보자의 각종 신상 의혹과 관련해 추가로 요구한 자료들이 국회에 제출되면 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인사청문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었습니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한 후보자와 여당(국민의힘)이 앞으로 검수완박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를 몇 가지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오늘 새로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검수완박에 대응하는 자세이기도 할 겁니다.
반대와 지지
“부패한 정치인과 공직자의 처벌을 어렵게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이 보게 될 피해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한 후보자가 청문회 인사말에서 한 말입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의원이 “인사말부터 검수완박이라는 말을 한 건 싸우겠다는 것이냐”라고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국민의힘 의원들과 한 후보자는 ‘검수완박’을 계속 언급하며 입법 과정의 절차적 부당성과 우려되는 부작용을 강조했습니다.
한 후보자는 앞서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강행을 두고 ‘야반도주’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20년 넘게 특수수사를 해온 장본인으로서 검찰 손에서 수사권이 떨어져 나갈 경우 새어나갈 범죄들, 특히 권력자들의 중대범죄들이 너무나도 많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공직자 직권남용은 부패범죄의 입구”, “요즘 권력자들은 금품을 대놓고 주고받지 않는다. 나중에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거나 채용 등 다른 방법을 쓴다”, “고발인에게서 이의 권한을 뺏는 것이 왜 공익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한 후보자가 질의응답을 통해 말한 내용들입니다. 한 후보자와 여당은 앞으로도 검수완박의 문제점을 계속 알릴 겁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171석의 거대 야당이 여전히 강력한 입법권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수완박의 문제점을 계속 알려 여론의 지지를 얻지 않으면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는 검찰 수사권은 말 그대로 ‘완전히 박탈’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서초동에 팽배한 상황입니다. 나아가 검찰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검수완박 움직임에 대해 저항하고 견제하기 위해선 여론의 지지가 필수적입니다. 이미 국회를 통과해 법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공직 후보자 입장인 한 후보자가 여전히 강하게 검수완박을 반대하는 이유일 겁니다.
9월 9일
검수완박 올해 9월 9일은 예년과 사뭇 분위기가 다를 것 같습니다. 한 후보자의 청문회가 열린 지난 9일 ‘검수완박’ 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정식 공포됐습니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6대 범죄 중 공직자 범죄, 선거범죄, 방위사업 범죄, 대형참사 등 4개 범죄를 제외(선거범죄는 연말까지 유예)하고 부패·경제범죄만 남기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삼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경찰로부터 송치받은 사건의 경우 검찰이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완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 별건 수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습니다.
두 법률의 시행일은 ‘공포 후 4개월이 경과한 날’인 9월 9일부터입니다. 다만, 선거범죄에 대한 규정은 올해 말인 12월31일까지 종전 규정이 적용됩니다.
바꿔 말하면, 검찰 입장에선 아직 9월9일까지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검찰 입장에선 이 기간을 골든타임으로 두고 수사가 가능한 부분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한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검경이 수사 중인 성남FC 사건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특정 사건을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검수완박법 시행까지 4개월 유예기간이 있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사건은 검찰이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장동 사건에 대해선 “현재 진행되는 사건은 여죄가 확인되면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월성 원전, 라임?옵티머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련 질의에 대해서도 “특정 사건을 전제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있는 죄를 덮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 후보자는 검사 시절 각종 대기업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까지 성역을 없는 수사를 해 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기개로 ‘조국 수사’ 이전까지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큰 지지를 받기도 했죠.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게 되면 더 이상 검사로서 수사할 수 없습니다. 한 후보자가 없더라도 검수완박 법 시행을 앞둔 검찰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권력형 비리와 부패범죄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야 ‘검수완박이 진정 국민에게 좋을 게 없다’는 여론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죠.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입니다.
또 윤석열 대통령이 ‘형사사법 개혁’을 공언한 만큼 이에 대한 한 후보자의 적극적인 협조가 예상됩니다.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 예산권 독립, 공수처법 24조 폐지 등의 실행이 유력합니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나 검찰의 예산권 독립은 모두 검찰 권한 강화로 이어지는 조치입니다.
특히 검수완박 법 시행 후 검찰 직접수사가 부패·경제범죄로 한정된 만큼 대통령령 개정 등 후속 법령 정비를 통해 이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부패·경제 범죄는 다른 범죄와 복합적으로 연계되는 만큼 이들 범죄의 정의를 확장하는 식으로 검찰의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증권범죄합수단
“취임하면 즉시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부활하도록 하겠다.”
한 후보자가 10일 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의 질문에 한 말입니다. 전 의원이 합수단의 필요성을 묻자 “현재로는 고도화하고 있는 증권 범죄 대처가 어렵고 서민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합수단은 2014~2020년까지 서울남부지검에 설치돼 금융 범죄 수사를 전담하며 ‘증권가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20년 1월 검찰 직접 수사 부서 축소 방침에 따라 폐지됐습니다. 한 후보자는 “현재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은 검사를 수사에서 배제하는 형식이라 대처가 어렵다”며 “취임 전이기는 하지만 (합수단 규모는) 효율적으로 대처하도록 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한 후보자가 “증권범죄합수단은 자본시장 교란 범죄를 엄단해 공정한 금융시장 조성 및 투자자 보호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 만큼 합수단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후 한 후보자의 거취를 두고 서울중앙지검장 혹은 수원지검장 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예상을 뒤엎고 한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했습니다. ‘검수완박’ 상황에서 묘수라는 해석도 나오고, 파격인사를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후보자가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검사로 살아왔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맞닥뜨릴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합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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