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주52시간제 '수렁'에 빠진 中企 사장의 절규

입력 2022-05-10 17:10   수정 2022-05-11 00:09

인천에 있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전문기업 디에스이는 신규 연구개발(R&D) 업무를 중국 현지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 스마트팜용 고부가가치 조명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며칠 밤낮을 지새우는 일이 흔한 R&D 업무를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 이후 더는 늘릴 수 없게 된 탓이다. 직원을 추가 채용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인력난이 굳어진 중소기업계에서 조명 분야에 특화된 R&D 인력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설상가상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세마저 거세졌다. 맞설 방법은 제품 혁신이 유일했다. R&D 공백을 메꾸고자 국내 외주업체를 찾았지만 이마저도 높은 비용 탓에 포기했다. 결국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현지 업체에 R&D 일부를 맡겨야 했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중국 업체에 R&D를 맡기는 황당한 일이 빚어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수시로 화상회의를 열며 기술과 디자인 자료를 고스란히 중국 업체에 넘겨주다시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에스이가 보유한 지식재산권은 300여 개. 매년 매출의 10%를 R&D에 투자하며 차곡차곡 쌓은 성과다. 박재덕 디에스이 회장은 “중국 업체의 의심스러운 질문에도 업무 진행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는 실정”이라며 “30년간 축적한 기술이 몽땅 넘어간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계도기간 1년을 전제로 주 52시간제가 300인 미만 기업에 도입된 것은 2020년. 통계청에 따르면 같은 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비 투자는 전년 대비 0.9% 감소했다. 2002년 이후 18년 만의 첫 역성장이다. 코로나19 확산을 감안하더라도 대기업(1.1% 증가) 및 중견기업(1.8%)과 달리 중소기업의 R&D 투자가 큰 폭으로 위축된 건 근로시간 단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설명이다. 제도 시행 2년이 지난 지금도 현장에선 주 52시간제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R&D 업무 등 집중 근로가 필수적인 분야를 고려해 보완책으로 도입한 탄력근로제도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시화국가산업단지의 한 냉매회수장비업체 최고기술책임자는 “수주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R&D는 시의성이 중요한데 6개월 단위 탄력근로제만으론 급변하는 시장에 대응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인들은 주 52시간제 등 노동 규제 개혁에 나서겠다고 공언(公言)한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크다. 주 52시간제 문제가 중소기업엔 결코 공언(空言)으로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문제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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