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저녁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 앤디 워홀(1928~1987)의 1964년작 ‘총 맞은 마릴린 먼로(Shot Sage Blue Marilyn)’가 나오자 장내가 술렁였다. ‘팝 아트의 제왕’이 남긴 최고 걸작의 ‘몸값’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5명이 달라붙은 ‘레이스’는 1억달러에서 출발한 작품 가격을 1억9504만달러(약 2500억원)까지 끌어올린 뒤에야 끝났다. 경매에 걸린 시간은 4분. 앤디 워홀이 ‘두 명의 피카소’를 한꺼번에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팔린 워홀의 작품은 ‘샷 마릴린’ 시리즈 작품 중 하나다.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은 먼로가 숨진 지 2년 뒤인 1964년에 제작됐다. 워홀은 먼로의 출세작인 영화 ‘나이아가라(1953)’의 현란한 포스터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했다.
작품 제목은 1964년 가을 행위예술가 도로시 포드버가 워홀의 스튜디오를 방문해 벽에 먼로의 초상화 작품을 겹쳐 세워달라고 말한 뒤 갑자기 권총을 발사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워홀은 먼로 시리즈를 각각 다른 색으로 5점 완성했는데, 2점만 총알에 관통됐다. 샷 세이지 블루는 이때 ‘살아남은’ 3점 중 하나다. ‘샷 마릴린’ 시리즈 중 오렌지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2017년 경매가 아닌, 개인 간 거래를 통해 2억달러에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매는 재미있는 뒷이야기도 낳았다. 워홀의 작품 등 이날 경매에 나온 작품 36점은 스위스 취리히의 유명 미술상이자 수집가 남매가 세운 토마스·도리스 암만 재단이 내놨다. 경매 수익 전액을 기부하기로 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을 낙찰받은 사람은 글로벌 미술계의 ‘파워 딜러’로 불리는 래리 가고시안이었다. 1986년 뉴욕 23번가에서 토마스 암만에게 이 작품을 판 사람이다. 자신이 내놓은 작품을 36년 만에 되찾은 셈이다.
이 중 가장 주목받았던 워홀의 작품이 당초 추정가(2억달러)와 엇비슷한 금액에 낙찰되면서 미술시장 호황세가 올해도 지속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해외 미술가에선 앞으로 2주간 계속되는 크리스티 경매의 총 거래 금액이 20억달러(약 2조5000억원)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20~40대 젊은 컬렉터들이 경매시장에 뛰어드는 등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필립 호프먼 뉴욕 파인아트그룹 창립자는 “2년간 시장에 나오지 못한 그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 작품을 사들일) 컬렉터들의 수요도 충분하다”며 “모두가 최적기를 기다렸고, 지금이 최적기”라고 밝혔다. 타데우스 로팍 호주 갤러리스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술 시장에 팔려고 내놓은 고가의 명작이 넘쳐나고, 돈도 충분하다”고 했다.
일각에선 경매가격이 계속 상승추세인 만큼 이번에 워홀이 세운 기록도 머지않은 시기에 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까지 세계 미술시장 최고가 경매 기록은 4억5000만달러에 팔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다. 윌렘 드 쿠닝의 ‘인터체인지’(3억2800만달러)와 세잔의 ‘카드 놀이하는 사람’(2억8800만달러)이 뒤를 잇고 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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