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의 간, 푸아그라는 캐비어(철갑상어알), 트러플(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힙니다. 이 푸아그라가 최근 사라지고 있습니다. 푸아그라를 ‘문화유산’이라고 부르며 즐기는 프랑스 식당에서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수 개월째 유럽을 휩쓸고 있는 조류독감 때문입니다.
최근 CNN은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에서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 ‘르 1862’를 운영하는 파스칼 롬바르드 씨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롬바르드 씨는 “최근 한 달 간은 배달되는 푸아그라 양이 줄었고, 이번주에는 전혀 구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미식(美食)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푸아그라가 대표적인 고급 음식입니다.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식당에서 푸아그라를 쓰지 못한다는 것은 비상사태지요. 때문에 롬바르드 씨는 현지 푸아그래 생산자들과 긴급히 만남을 갖고 푸아그라 확보 방책을 찾고 있습니다.
‘르 1862’가 위치한 페리고르는 푸아그라의 주 생산지입니다. 그런데 최근 페리고르를 포함한 프랑스 전역에 조류독감이 유행하며 위기가 닥쳤습니다. 프랑스 농림부는 조류독감의 유행을 막기 위해 가금류 1600만마리를 살처분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수치입니다.
조류독감을 옮기는 건 철새들입니다. 따뜻한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내던 철새들은 봄에 유럽으로 돌아올 때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가지고 옵니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봄에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가 많은데, 올해는 거위 주 생산지인 페리고르와 서부 페이 드 라 루아르를 덮쳤다는 겁니다.
프랑스 농가들이 간을 살찌우기 위해 키우는 거위들도 조류독감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올해 푸아그라 생산량은 최대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프랑스 푸아그라 생산업자의 80%가 조류독감에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푸아그라 수입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프랑스가 유일한 푸아그라 생산국은 아니지만, 유럽 내 푸아그라 생산국이 네댓 곳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필 다른 생산국들도 조류독감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 생산국이 몇 곳 안 되는 건 푸아그라 생산 과정이 잔혹하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처음 푸아그라를 즐기기 시작한 건 고대 이집트 시기입니다. 당시 철새들이 장거리 비행을 하기 전 스스로를 살찌우는 것을 본 이집트인들이 키우는 가금류에 이 방법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거위와 오리 등을 억지로 살찌워 보니, 비대해진 간의 풍미가 좋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푸아그라의 생산과정은 비탄받을 소지가 충분합니다. 푸아그라를 만드는 과정인 ‘가바쉬(gavage)’는 어린 거위를 가둔 뒤 목에 끊임없이 옥수수 같은 사료를 밀어넣는 방식입니다. 거위가 살이 찌면서 간이 일반 크기의 10배 수준까지 커지면 도축합니다. 생산과정만 봤을 때는 고급스러움과 거리가 멀지요.
때문에 대부분 유럽 국가는 푸아그라 생산 및 판매를 1990년대부터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푸아그라를 프랑스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법안까지 만들며 보호한 프랑스 외 푸아그라 생산국은 스페인과 벨기에, 불가리아와 헝가리 정도입니다. 이미 생산이 줄어든 상황에서, 올해는 전염병으로 공급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지요.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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