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부임한 이은형 하나금융투자 대표(사진)는 출근하자마자 2000여명의 전 직원과 식사 약속을 잡았다. “밥 한끼도 먹지 않고 직원들에게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직원들과 ‘릴레이 도시락 점심’을 진행하면서 그는 회사 복지제도의 많은 허점을 발견했다.
대표적인 것이 직원 주택자금제도였다. 그는 “미혼이나 비혼인 사람은 회사가 제공하는 전세 지원 자금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며 “취임 첫날에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취임 두 달만에 개인 컴퓨터도 모두 교체해줬다. 직원의 복장은 완전 자율화했다. 회의 때 ‘PPT 발표’도 없앴다. 발표는 임원이 하는데, 자료는 직원들이 만드느라 고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50여개 지점 현장을 모두 돌고, 1년여에 걸쳐 2000여명의 직원들을 만나며 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려 애썼다”며 “하나금융투자의 성장은 직원들의 노력과 희생 덕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가운데 당기순이익이 하위권이었던 하나금투는 올 1분기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금융투자 등을 제치고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이 같은 실적을 올린 비결에 대해 이 대표는 “‘물 들어올 때 노를 더 안젓는 전략’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올해 시장 상황에 대한 대비를 굉장히 많이 했다”며 “개인 투자자들이 증시를 빠져나갈 것이라 예상하고 지난해 말부터 우량자산 중심으로 신용공여를 제공하고 채권부문을 선제적으로 축소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IB) 부문이 견조한 실적을 받쳐준 가운데 적절한 리스크 관리가 빛을 발한 셈이다.
직접 상품 개발에도 나섰다. ‘증여랩’이 대표적이다. 기본적으로 증여를 목적으로 하는 상품이지만 미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가운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점수가 높은 기업으로 구성돼 투자상품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대표는 “증권사들은 거래 횟수를 늘리면서 수익을 창출하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상품을 통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글로벌 진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최근 베트남 증권사 ‘BIDV 증권’의 지분 35%를 인수해 2대 주주로 올라서는 등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지고 있다. 이 대표는 글로벌 금융 시장 발전 단계를 네 단계로 분류했다. 고객 기반이 막 형성된 시장 개화기와 고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는 시장 발전기, 몸집을 불리기 쉽지 않아지는 시장 과도기, 상품 서비스가 극도로 고도화되는 시장 성숙기 등이다. 이 대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중남미 등이 2단계인 시장 발전기에 해당하는 금융시장”이라며 “하나금투가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할 시장”이라고 말했다.
직진출하는 대신 하나금융그룹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하나금융그룹은 4대 금융지주사 중 해외 지점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 25개국에 200여개 지점을 거느리고 있다. 이 대표는 해외 네트워크를 총괄하는 하나금융지주 글로벌 부회장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무분별하게 해외 진출을 시도했을 때 결국 피해보는 건 고객과 주주”라며 “BIDV 증권의 지분 인수 역시 하나은행과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올해 발행어음 시장 진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형 IB는 자기자본의 2배 한도 내에서 만기 1년 이내 어음을 발행할 수 있다. 발행 어음으로 조달한 자금으로 기업 대출, 부동산 금융 등 수익성 높은 사업 진출이 가능하다. 이 대표는 “1년여간 전산 등 발행어음 사업에 필요한 준비를 갖췄다”며 “인허가가 나는대로 올해 안에 발행어음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ESG 경영’에 특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직원용 텀블러와 에코백을 제공해 종이컵 이나 쇼핑백 사용을 줄이고 있다. 올해 부친상으로 받은 조의금을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했다. 지난해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단체인 사랑의 달팽이에 1731만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당시 하나금융투자 직원수 1731명과 같은 액수다.
탄소배출권을 활용한 수익모델도 창출하고 있다. 지난달 말 방글라데시 6개주에 태양광 정수시설 123대를 보급하는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진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공헌 활동을 통해 획득한 탄소배출권을 운용해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라며 “탄소 분야에서 증권사 1위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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